산마루금
[스크랩] 오랫동안 왜적의 침입을 막는 전략의 요충지였던 수인산(`11.3.5) 본문
수인산(修仁山, 561m)
산행코스 : 상림마을→홈골재→수인사→수인산성 서문→남문→병풍바위→서문(회기)→북문→노적봉→북문(회기)→수리봉→계관암→수미사→자미마을 (산행시간 : 4시간50분)
소재지 :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과 장흥군 장흥읍, 유치면, 부산면의 경계
산행일 : ‘11. 3. 5(토)
같이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밋밋한 肉山이 대부분인 근처 산들과 달리 암릉과 암벽이 잘 발달된 山, 바위산인데도 산꼭대기에는 천연의 평탄지가 잘 발달되어있으며, 물이 솟아올라 우물이 있다. 그러한 특징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되었고, 兵馬節度使營에 소속되었던 修仁山城이 있다.
* 수인산성(修仁山城 : 전라남도 기념물 제 53호), 성곽의 둘레가 약 6km(높이 5m),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수축한 협축식(夾築式 : 城郭의 兩쪽을 돌로 쌓은 형식) 산성으로서 성곽의 兩面이 거의 수직에 가깝게 축조(築造)되었다. 백제시대에 최초로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이후 증·개축을 계속해오다 1410년께 왜구의 침입이 심해지자 지금의 모습으로 성을 보축했다고 한다. 또한 수인산성은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되어, 兵營兵使가 수성별장(守城別將)으로 임명돼 상주했었다.
▼ 산행들머리는 병영면 소재지에 있는 상림마을
광주-무안고속도로 나주 I.C에서 빠져나와, 13번 國道를 이용 나주시와 영암읍을 통과하면 월출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산행기점으로 삼고 있는 천황사로 들어가는 천황사교차로가 보인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달리면 장흥교차로가 보이는데, 이곳에서 835번 地方道로 내려서서 장흥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오늘 산행이 시작되는 병영면 소재지에 다다르게 된다. 산행 기점인 상림마을은 면소재지 시내 끄트머리에서 만날 수 있다. 상림마을이라고 적힌 표지석 앞이 버스가 들어갈 수 있는 最終地點(물론 승용차는 수인사까지 들어갈 수 있다), 수인사로 들어가는 진입로 왼편에 마을표지석과 등산안내판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수인산 방향으로 고개를 들어보면 홈골저수지 제방 뒤편으로 병풍바위가 보인다.
▼ 수인산 방향의 정면, 농로 수준의 길을 따라 10분쯤 가면 높다란 제방을 만나게 된다. 바로 홈골저수지이다. 제방을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 능선의 끝자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악회 시그널이 덕지덕지 매달린 능선의 초입이 278봉과 병풍바위를 거쳐 修仁山城 南門에 닿게 되는 코스의 들머리다.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저수지를 따라 곧장 들어가면 수인사를 거쳐 修仁山城 西門에 도착하게 된다.
* 홈골저수지, 농수용으로 축조되었지만 수인산과 융화된 모습이 여간 멋지다. 잔잔한 물결위로 수인산의 풍광을 스스럼없이 그려내고 있는 모습은 자연과 함께 동화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저수지 옆길로 이름 모를 가로수가 펼쳐져 있는 오솔길을 따라 0.7㎞ 정도를 들어가면 아담하고 소박한 수인사가 나온다.
▼ 홈골저수지를 왼편에 끼고 저수지 상류로 들어서면 수인사가 보인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民家의 기와집을 닮은 건물형태는, 寺刹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고향마을의 여염집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사찰 마당에 서 계시는 부처님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讀經소리만 아니라면, 얼핏 사찰이라고 눈치 채기 힘들 정도이다. 네델란드 상인인 썼다는 ‘하멜표류기’를 보면 제법 규모가 큰 사찰이었던 것 같은에... '스님들이 일행에게 옷이나 먹을거리를 마련해 주거나 조선생활에 필요한 조언을 해 줬다'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 수인사(修仁寺) : 원래의 수인사는 그 흔적으로 볼 때, 병풍바위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兵營의 유서 깊은 사찰로 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홈골저수지 상류에 위치한 현재의 수인사는,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절로서, 해남 대흥사의 末寺이다.
▼ 수인사 뒤편으로 흐르는 냇가 다리를 건너면 자그마한 안내판이 길을 안내하는 오래 됨직한 산길이 나온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오른편으로 감나무 과수원이 보이고, 과수원의 끝에서 본격적으로 산길이 열리고 있다. 완만하게 시작하던 등산로는 금방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등산로 주변은 수령이 그다지 많지 않은 소나무 일색, 헬기장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떡갈나무 가지가 긴 터널을 이루기 시작하고, 아랫도리는 山竹들이 나름대로 등산로를 장식하고 있다.
▼ 수인사에서 별다른 특징을 보여주지 못하는 등산로를 따라, 한 시간 조금 못되게 오르면 山城의 西門에 다다르게 된다(수인사에서 약 1.4Km). 서문은 북쪽 방향에 成人 男子의 가슴높이로 성벽을 두른 제법 너른 공터만 보일 뿐, 문의 흔적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한쪽 귀퉁이에 삼층 정도 높이의 바위가 보이는데, 이 바위가 兵馬節度使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명문바위다. 공터에서 城內로 들어가는 길목에 옹달샘이 보이고, 파란 플라스틱 바가지가 놓여 있으나 냉큼 마시기에는 글쎄...
▼ 481봉과 山城南門의 중간 안부에서, 등산로는 제법 심한 오르막 구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 오르막의 끝에는 오르며 힘들었던 고통을 일거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빼어난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눈앞 가득 펼쳐지는 병풍바위의 위용에 놀라, 다들 연방 카메라 셔터만 누르고 있다. 이곳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산성의 南門에 다다르게 된다.
* 西門에서 481봉에서 내려서는 안부까지 되돌아 내려오는 길은, 순전히 집사람을 향한 내 사랑의 선물이다. 수인사에 들른 탓에 집사람과 길이 엇갈린 난, 山行 내내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간식이나 물 등, 산행에 필요한 물품들이 모두 내 배낭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산을 오르고 있을 그녀에 대한 내 배려는, 중간에 만나게 되는 지점(서문)에서 그녀가 오르고 있는 코스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되돌아 내려가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평소에는 맨날 후미를 고집하던 집사람이, 당당히 선두 대장과 같은 그룹에 끼어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것을 보고 以心傳心이라고 하면 맞는 말일 것이다.
▼ 병풍바위, 難攻不落의 요새인 양 허공을 갈라 우뚝 서 있는 수인산 최고의 절승인 병풍바위. 저 바위가 山城의 城壁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어느 누가 접근할 수 있으리오...
▼ 성터를 밟고 넘어서면 곧 오른쪽으로 南門이 보인다. 남문은 城樓가 없는 暗門의 형태. 그 남문을 오른쪽으로 보고 정면으로 조금 더 진행하면 갈림길을 만나고 다시 진행방향 약간 왼쪽의 직진 길을 조금 더 가면 성 내에 세워진 이정표를 만난다. 이 부근에 우물터와 맷돌 등의 사람이 산 흔적이 보인다.
* 남문을 지나서 城內로 들어서면, 역사의 편린들이 여기저기서 꿈틀거리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멀리는 고려 때부터 가까이는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유적이나 지형적인 특징으로 남아 찾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성벽은 물론이고, 곡식을 빻기 위해 만든 돌확과 우물터, 그리고 비밀통로인 水口와 봉수지가 그렇다. 이는 때론 倭寇를 피하거나, 또 다른 난리를 피하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던 민초들이 생존을 위해 도구로 삼았던 흔적들이다.
▼ 北門으로 가는 등산로는 西門으로 가기 전에 만나는 이정표에서 오른쪽 산자락으로 연결된다. 등산로는 능선이자 성터를 따라 이어진다. 오르막 능선은 高度를 낮추었다가 다시 한 번 고갯마루를 넘고, 내리막길을 달린 후에 상당히 너른 공터에 다다른다. 건너편에는 수인산의 정상인 노적봉이 우뚝 솟아있다. 이 분지가 바로 北門터이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서면 홈골로 원점회기 할 수가 있다.(홈골까지 1.0㎞)
▼ 산성으로 둘러쌓인 정상부는 高麗 末부터 朝鮮 末까지 전라 兵營城의 절략적인 요충지로, 왜구가 침략할 때마다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었고, 병영면의 지명은 朝鮮 태종때 倭寇를 막을 목적으로 병영을 설치한데서 유래된 것이란다.
▼ 北門에서 수인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 정상 방향을 따라 휑하니 난 봉우리 가운데 길과, 왼편 산성터를 따라 오르는 길이 있으니 입맛에 맞게 오르면 될 일이다. 왼편 山城터를 밟고 오를 경우, 정상까지는 약 20분 정도가 걸린다.
▼ 정상은 열 평 남짓한 분지, 한가운데에 자연석으로 만든 아담한 정상표지석이 서 있다. 정상에 오르면 봉수지터답게 사위가 시원하게 트이고 있다. 서쪽으로는 월출산의 뾰쪽한 봉우리들이 하늘금을 그리고 있고, 월출산을 기준으로 시계의 반대방향으로 흑석산, 만덕산, 천관산, 사자산, 제암산 등 남도의 명산준봉들이 모두 조망된다. 당연히 푸른빛의 탐진호도 발아래 펼쳐지고 있다.
* 노적봉은 옛날 봉수대가 설치돼 있었단다. 동쪽으로 장흥 억불산, 서쪽으로 영암 갈두산, 남쪽으로 마량 남원포를 이어주는 중계 역할을 담당했으며, 강진 병영성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데, 지금은 그 흔적도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 정상에서 떡갈나무만 무성한 가운데 길로 내려가면 10분쯤 걸려 북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기서 아까 왔던 山城길이 아닌, 왼편으로 난 길(이정표에는 별장터로 표시됨)로 접어들면 西門에서 수리봉으로 내려가는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닿게 된다. 올바른 길로 진행하려던 난, ‘산악회에서 안내하는 대로 따르라’는 산행대장의 지청구를 듣고 난 뒤, 아까 지나왔던 山城길, 그러니까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었다.
▼ 삼거리에서 수리봉으로 가는 등산로는 말갈기 같이 우뚝 서있는 능선을 걷게 된다. 능선은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게 되는데, 봉우리들은 대부분 오른편은 絶壁이고, 왼편 斜面은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은, 능선의 생김새에 알맞게 돌로 쌓아 놓았다. 떡갈나무와 박달나무, 그리고 산죽이 허리 아래로 차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30분 정도 걸으면 드디어 성터를 벗어나게 된다.
▼ 수인산은 암릉과 바위벼랑이 범상치 않다. 그래서 산의 능선이 하늘과 맞닿으며 그려내는 하늘금 또한 예사롭지 않다. 어떻게 보면 ‘맥도널드 햄버거’의 상표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다시 보면 敎育科學技術部의 로고인 기역자들이 포개져 있는 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부드러운 능선들이 대부분인 남도의 산하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장관이다. 저렇게 헌걸찬 장관은 이 근처에 있는 월출산이나 주작-덕룡산의 특징인데, 가까이 있는 탓에 감염된 탓일까???
▼ 城터를 벗어나서도 등산로는 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대체로 능선의 마룻금을 이어가게 된다. 간혹 斜面으로 우회하는 경우도 있지만 위험하거나 어려운 곳은 없다. 능선을 걷다보면 곳곳에서 奇巖怪石들을 만나게 되고, 그 기괴함에 취하다보면 발걸음은 자연스레 가벼워진다. 성터를 벗어나 수리봉까지 대략 1시간 가량 걸린다.
▼ 수인산의 특징 중 하나는 나무들의 수령이 대부분 어리다는 것이다. 성 안은 물론 성 밖을 둘러봐도 여느 산에서 쉬 발견되는 古木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수령 60년 미만의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소탕을 위해 공중에서 기름을 뿌려 온 산을 태운 결과에 기인한 것이란다. 특히, 정상인 노적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엔 소나무 한 그루 없이 작달막한 떡갈나무類만 무성하다.
▼ 멀리서 보면 奇巖으로 눈길을 끄는 수리봉(412m)은 암봉이다.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우회하도록 나 있지만, 정상에 오른 후 왼편으로 우회할 수도 있다. 우회하지 않고 수리봉으로 오르는 수고를 조금만 한다면, 그 수고는 곧바로 보상 받을 수 있다. 수리봉 정상은 널찍한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탐진호의 리아스식 湖岸이 눈앞에 다가오고, 남쪽으로는 장흥읍 너머로 희미하게나마 남해바다가 보이니까 말이다.
▼ 수리봉을 지나 20분 쯤 더 내려가면, 자미마을로 내려가게 되는 254봉에 닿게 된다. 흘러내리는 암릉이 닭벼슬 같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계관암은, 254봉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꺾여 내려가는 길로 연결된다. 鷄冠巖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연출되는 계관암의 기괴한 모습에 빠져들다 보면, 오늘 산행의 피로는 어느새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 계관암에서 등산로는 왼쪽사면을 따라 이어진다. 이후 낭떠러지 절벽인 병풍암 끄트머리를 20m 정도 앞두고 왼쪽르로 내려서서, 갈之자로 돌아 내려서면 편백나무와 어우러진 병풍암 아래에 닿게 된다. 마애여래좌상(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93호)이 새겨진 병풍암 아래에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모습의 山神堂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산행 날머리는 자미마을 駐車場
병풍바위를 돌아내려오면 용왕당, 용왕님(?)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약수터인 용왕당은 오랜 가뭄 탓인지 물기 한 점 찾아 볼 수 없다. 용왕당에서 都會地 변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임시가옥 같은 느낌을 주는 寺刹인 수미사를 지나면 자미마을이다. 동네의 고삭을 돌아 내려오면 마을 주차장이 보인다. 254봉에서 대략 25분 정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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