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루금
방씨부인전(6) 본문
본 소설은 덕수이씨 가문에서 태어나신 성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상주방씨
가문의 연꽃아씨를 만나 혼인하고 장인 方震(방진)의 권고로 文科(문과)에서 武科(무과)
로 전향하여 과거에 합격하는 기간 동안의 행적을 소설화한 작품입니다. 많은 애독 바랍
니다. 본 소설은 2012 鶴山文學 겨울호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방씨부인전
- 저자 : 여강 최재효
6
關關雎鳩(관관저구) - 관관히 우는 물수리새 / (在河之洲)재하지주 - 냇물 가까이 노니네
/ (窈窕淑女)요조숙녀 - 그윽하게 아름다운 숙녀 / (君子好逑)군자호구 - 군자의 좋은 짝
이라네.
아지를 뒤따라 온 어둠 속의 사내는 연꽃아씨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연꽃아
씨를 잠시 바라보다가 달을 올려다보며 시를 읊었다. 시를 낭송하는 소리가 어
찌나 청아하고 맑은 지 연꽃아씨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연꽃아씨는 사내가 더 이상 시를 읊지 않자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구
對句를 이었다.
求之不得(구지부득) - 아무리 구하여도 얻지 못해 / 寤寐思服(오매사복) - 자나 깨나 그대
생각에 / 悠哉悠哉(유재유재) - 오호라 통재라 / 輾轉反側(전전반측) - 밤마다 잠들지 못하
네.
연꽃아씨는 흐느끼듯 대구를 이으면서 목이 메었다. 한 구를 읊고 나면 그 동
안의 서러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라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연꽃아씨가 대구를 끝내자 사내는 가까이 다가와 연꽃아씨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하였다. 달빛에 젖은 사내의 하얀 얼굴에서 금방이라도 은가루
가 눈처럼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다.
“이 사람, 이순신라 합니다. 이 밤에 뱀골에서 나를 만나러 오셨다니 반가우
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됩니다. 제가 청혼을 거절한 일로 열흘 동안 곡기를
끊고 자리에 누워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사람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리
위험한 일을하셨습니까? 그대와 방대감 어른에게 정말로 미안하게 되었습니
다. 저 아이 편에 보낸 붉은 서신을 보고 그대의 단심丹心을 알았습니다. 그리
고 지난 열흘 동안 이 사람 역시 그대의 청혼을 거절하고 매일 밤 전전반측하
였습니다.” 연꽃아씨는 잠자코 이순신의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연꽃아씨가 노란 색 편지지에 피로 쓴 내용은 시경(詩經)에 첫머리에 등장하는
‘관저(關雎)’라는 시였다. 남녀상열지사라고 하여 혹자는 굉장히 외설적이라 하
지만 요즘의 사회상을 헤아려 볼 때 그리 큰 흠이 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
순신은 진홍색 피로 쓴 ‘관저’를 읽어 내리며 가슴이 뭉클하고 콧날이 시큰거
려 금방 눈가가 젖었다. 그간 방진과 연꽃아씨에 대하여 꽁꽁 얼어있던 마음이
어느새 햇볕에 눈 녹듯 녹아버렸다. 오히려 곱게 자란 몸으로 몸종 하나 데리고
자신을 찾아온 연꽃아씨에게 미안함과 동시에 깊은 연정을 느꼈다.
만약 연꽃아씨가 서신도 없이 밋밋하게 청년 이순신을 만나 사모의 정을 알
아 달라며 매달리거나, 눈물이나 질질 짜면서 유치한 구애작전을 펼쳤다면 아무
대꾸도 없이 되돌아갔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연꽃아씨에게 품었던 연
정도 순식간에 식어버렸을 것이 뻔했다.
백여 마디의 구구한 사연보다 피로 쓴 16자의 시구가 사나이 이순신의 가슴
에서 꺼져가고 있던 사랑의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결과를 낳았다. 절묘한 시구
와 진실함으로 한순간에 사내의 마음을 빼앗은 연꽃아씨의 묘수(妙手)는 청년
이순신이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단호하게 거절했던 데릴사위 조건을 받아
들이게 했다.
“오늘은 너무 늦었습니다. 내일 아침에 내 아버님과 함께 대감어르신을 찾아
뵙겠습니다. 이 사람이 잘못 생각한 듯 합니다. 선녀보다 더 고운 그대에게 마
음고생을 시킨 이 사람을 용서하세요. 나의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나와 그대의
고운 인연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두 가문이 합심하면 우리 대대손손
에게도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순신은 따뜻한 시선으로 연꽃아씨
를 바라보았고 연꽃아씨는 감격에 겨워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억지로 참느라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선랑님, 그게 정말이어요? 내일 아침 꼭 오실 거죠?”
“사내대장부가 어찌 한 입으로 두말을 할까요? 내일 아침 꼭 아버님을 모시
고 가서 방대감 어르신을 찾아뵐 테니 집에 돌아가면 그리 말씀해주세요.” 이
순신은 침착하고 당당한 어조로 연꽃아씨를 안심시켰다.
“고맙습니다. 선랑님, 정말로 고맙습니다.” 연꽃아씨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
잡고 반쯤 흐느끼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하였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지가 답답한지 불쑥 나섰다.
“우리 아씨가 지난해 봄부터 거의 하루도 안 거르고 선랑님과 고운 인연을
맺게 해달라고 밤마다 천지신명님에게 지성을 드렸구먼요. 선랑님은 우리아
씨 정성을 알아주셔야 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치
나 아씨는 정화수를 떠놓고 손금이 다 닳도록 빌고 빌었어요. 선랑님 때문에
아마 우리아씨 손금이 모두 지워졌을 거예요. 호호호호......” 아지가 방정맞
게 웃자 연꽃아씨의 두 뺨이 더욱 달아올랐다.
‘지난봄부터? 그렇다면 지난 해 어느 여름날 밤, 내가 우연히 목격한 연꽃
낭자의 지성 드리는 대상이 바로 나였단 말인가? 아아, 이럴 수가? 이미 나
와 낭자 가슴에 연정의 씨앗이 꿈틀대고 있었구나. 이런 인연이 다 있다니.
내 그런 낭자를 두고 매정하게 굴었구나.’ 이순신 역시 연꽃아씨가 지성을 드
리는 대상에게 질투심을 품었던 일에 속으로 부끄러워하였다.
“아가씨, 어서 돌아가요. 대감마님께서 아무런 말도 없이 아씨가 없어진 것
을 아시면 크게 걱정하실 거예요.” 아지가 연꽃아씨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아지 말대로 어서 가보셔야지요. 밤길에 위험한 일이 많습니다. 내가 뱀골
까지 같이 가겠습니다.” 청년 이순신이 뱀골을 향해 앞장섰다.
“아닙니다. 아직 서당이 파하지도 않은 듯 한데요?”
“형님께 늦을지도 모르니 학동들을 지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청년
이순신이 앞장서고 연꽃아씨가 바싹 뒤를 따랐다. 아지는 무엇이 그리 신
이 나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저 멀리 앞장서서 뛰어갔다. 지난해 설날 뱀골
에서 우연히 시선이 마주친 이후로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서로를 그리워하
였지만 어떻게 마음을 알리 방도가 없어 애만 태우고 있었다.
처음으로 두 사람은 가까이 있게 되었지만 두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 같았다. 구름 속에 들어갔던 달이 얼굴을 내밀면서 두 사
람 머리 위에 백설이 뽀얗게 내려앉았다. 연꽃아씨는 조금 전 백암에 올 때
까지만 해도 가슴을 졸이며 천근만근 발걸음을 이끌고 왔지만 지금 열흘 동
안 자리에 누워있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고 발걸음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달빛에 촉촉이 젖은 들길을 걸으면서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
었다. 두 사람의 인기척을 들은 개구리들은 모르는 척 하며 더욱 큰소리를
노래를 하였고 개똥벌레들이 연꽃아씨 머리 위를 빙빙 돌다가 이순신에게
달려들기도 하였다. 달빛이 하얗게 내려앉은 산에서 갑자기 꿩 두 마리가
울면서 날아올랐다. 깜짝 놀란 연꽃아씨는 얼떨결에 이순신의 팔을 잡았다
가 얼른 놓았다. 이순신은 모르는 척 하며 천천히 걸었다.
“어찌 시경의 관저라는 시를 혈서로 써서 이 사람에게 보낼 생각을 하셨
습니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침묵을 이순신이 깼다.
“선랑님께서 만약 저를 만나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오늘 이승의 모든 인연
을 끝낼 각오를 했답니다. 아지의 말처럼 지난해 설날 뱀골에서 선랑님을 처
음 뵌 뒤로 저는 하루도 선랑님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잊으려고 하여
도 잠시 바람처럼 스친 선랑님의 얼굴을 도저히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속내를 드러낼 수 없어 속이 까맣게 타버렸답니다. 그런 저의
일편단심을 이승에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선랑님께 혈서를 써 보낸 것입
니다. 선랑님, 고맙습니다.” 연꽃아씨가 가던 길을 멈추고 이순신을 바라
보았다.
‘아아, 이리 고울 수가. 내 지금까지 본 수많은 규수 중에 최고의 절색이로
다. 이리 아름다운 여인의 청혼을 거절하였다니 하마터면 두고두고 후회를
할 뻔 했구나.’ 두 사람은 마치 마을 어귀에 서있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
군처럼 서서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아, 과연, 과연 하늘이 내리신 분이시다. 지금까지 내가 봐온 사내들 중
에 으뜸이로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고루 지닌 선랑이시다. 언젠가부터 꿈
속에 어렴풋이 나타나신 분이 바로 내 앞에 서계신 선랑님이시다. 이게 분명
꿈은 아니겠지.’ 연꽃아씨는 슬며시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내 마음을 받아주신다면 아씨와 해로동혈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내 잠
시 어줍지 않은 객기를 부렸습니다. 덕수이씨와 상주방씨 두 가문이 서로 돕
고 의지하며 오래오래 정을 주고받기를 원합니다.” 이순신이 잔잔한 미소를
짓자 연꽃아씨는 다시 흐느꼈다.
“선랑님, 고맙습니다. 오늘 제 목숨뿐만 아니라 방씨 가문을 살리셨습니다.”
연꽃아씨의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이순신은 닦아주었다.
“내 그대를 이승에서 뿐만 아니라 저승에 들더라도 은애하리다. 내 진작 용
기를 내지 못한 것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이순신이 살며시 연꽃아씨의 두 손
을 잡자 달은 야속하게 다시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뱀골 방진의 집은 이른 아침부터 부산했다. 노복들은 안채와 사랑채를 돌
며 기둥에 걸린 거미줄을 제거하고 마당을 깨끗하게 쓸었다. 영문을 모르는
여자종들은 부산하게 부엌을 들락거리며 아침상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방
진은 집안 구석구석을 돌며 혹시 청소가 안 된 곳이 있나 살피고, 부인 홍씨
는 백년지객이 될 이순신에게 대접할 아침상을 정성껏 준비하였다.
“마님, 오늘 아침에 연꽃아씨 낭군 되실 분이 오신다면서요?” 여종들은 괜
히 신이 나서 히죽거렸다. 연꽃아씨는 간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으면서
일찍 일어나 단장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얘야, 그 청년이 분명 인편에 오늘 아침에 우리 집에 오겠다고 한 게 참말
이냐?” 방진은 연꽃아씨에게 묻고 또 물었다. 연꽃아씨는 어젯밤 백암에 갔
던 일을 차마 말하지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였다. 열
흘전만 해도 방씨가문의 청혼을 거절하여 한바탕 초상집 분위기를 만들더니
이제는 잔칫집 분위기로 만든 당사자를 방진은 빨리 보고 싶어 했다.
사시가 좀 넘어서 이순신이 아버지 이정과 함께 뱀골 방진의 대 저택에 도
착하였다. 팔척장신의 옥골선풍 헌헌장부 이순신이 옥색 비단으로 지은 도
포에 검정 갓을 쓰고 나타나자 여종들은 탄성을 질러댔다. 하얀 얼굴에 붉은
입술, 짙은 일자 눈썹, 반듯한 이마, 따뜻해 보이면서 은은한 눈매, 의젓한
걸음걸이, 이순신 풍채에 집안사람들은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대감마님, 이순신이라고 합니다. 미리 통보도 못 드리고 아버님과 찾아뵙
게 되었습니다.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청년 이순신이 방진에게 당
당하고 깍듯하게 예를 갖추고 인사를 올렸다.
“아이고, 사돈 어르신, 정말로 잘 오셨소. 내 두 분 기다리다가 눈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자네도 정말로 잘 오시었네. 자자, 어서, 어서 사랑채로 드십
시다.” 방진은 벌써부터 사돈이라고 칭하며 이정의 손을 덥석 잡더니 두 사
람을 사랑채로 안내하였다.
방진은 하인을 시켜 홍씨 부인과 연꽃아씨를 사랑채로 나오라고 하였다.
갑자기 방진의 집 하인들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남녀 하인들은 사방을 살
피며 끼리끼리 모여 귓속말로 이순신 부자에 대하여 밀담을 나누었다.
“하이고, 우리 아씨는 참으로 좋겠네. 저렇게 헌헌장부를 낭군으로 맞으
니 한오백년 해로하는 일만 남았네. 에구, 우리 딸년은 어느 세월에 저런
신랑감을 맞이하누?” 나이 먹은 한 여종이 질투 섞인 말을 하자 옆에 있던
다른 여인이 눈을 흘겼다.
“아따, 성님은 언년이가 얼굴이 반반한데 뭘 그러슈. 우리 꼭지가 걱정이
지유. 사내나 계집이나 그저 잘나고 봐야지. 개차반으로 생기면 지나가는
강아지도 쳐다보지 않으니 원. 저렇게 잘난 신랑감을 얻으려면 삼대가 복덕
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하는데. 에구, 우리 같은 인생들이 언감생심 꿈
이나 꿀 수 있을까?” 두 여인뿐만 아니라 다른 여종들도 신세를 한탄하며
한숨을 푹 푹 내쉬었다.
“방대감, 아침 일찍 미리 기별도 하지 못하고 불쑥 찾아와 결례를 한
게 아닌지 모르겠소이다.”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이 방진과 홍씨 부인을
번갈아 보았다.
“아이고, 사돈어른. 그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시나요? 어제 제
딸아이 한테 오늘 아침에 오실 거라는 소식을 듣고 밤새 한잠도 못 잤답니
다. 다 죽어가던 제 딸이 이렇듯 하루아침에 이슬 머금은 봄꽃처럼 일어났
답니다. 하하 하하하......” 방진은 사랑채가 떠나가도록 웃었다.
“어르신, 정말 잘 오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무덤 속 같은 어둠속에서
광명을 보는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제 딸이 어떻게 이렇듯 당당한
가랑佳郞을 알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참으로 자랑스럽고 대견합니다.”
홍씨 부인은 만면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이정과 이순신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였다. 이정은 홍씨 부인 옆에 반쯤 고개를 숙이고 서있는
연꽃아씨에게 눈길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아, 참으로 고운 규수로다. 한양에서도 이렇듯 참하고 아리따운 규수
를 보기 힘든데 아산 뱀골에서 경국지색 뺨치는 며느릿감을 보게 되다
니 참으로 우리 아이에게 홍복이로구나. 우리가 한양에 살다가 이곳으
로 내려온 것과 이곳에 방씨 가문이 거주하게 된 것도 모두가 우리 덕수
이씨 가문과 예정된 인연을 맺기 위한 수순인가?
그게 아니라면 조선팔도에 그 많은 가문 중에 하필 상주방씨란 말인
가? 우리 가문은 초계변씨와 대를 이어 인연을 맺었건만......’ 이정은
넋을 잃고 연꽃아씨를 바라보며 속을 중얼거렸다. 장차 시아버지가 될
이정의 강렬한 시선에 연꽃아씨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애야, 뭐하고 있니, 어서 인사 올리지 않고서. 자자, 사돈어른 좌정하
시지요.” 방진의 말이 끝나자 연꽃아씨는 날아갈 듯 이정에게 큰절을 올
렸다. 또한 이순신과 맞절로 인사를 나누자 바라보던 방진과 이정 그리고
홍씨 부인은 흐뭇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두 집안 어른들의 인사가 끝
나자 본격적인 혼사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정과 이순신은 방진이 제의
한 데릴사위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좋은 날을 택일하여 혼례를 치르
기로 하였다.
“그러면 팔월 모일이 어떻겠습니까? 택일은 제가 알아보았습니다.” 방진
이 의외로 혼사를 서두르고 있었다. 방진이 혼사를 서두르는 이유는 영의정
이준경이 한양으로 떠나면서 가능하면 서둘러 혼사를 성사시키라고 언질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혼사를 차일피일 끌다가 다른 가문에서 청년 이순신에
게 눈독을 들이고 신랑감을 채갈 수도 있었다. 이정은 혼사가 성사되면 올
가을 쯤 아들 이순신을 장가보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다다음달인 팔월에요? 허허 허허허.....” 이정은 크게 놀라면서도 웃음으
로 방진의 의사에 승낙의 표시를 하였고 청년 이순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연꽃 아씨는 혼례 이야기에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정도 예의바르고 헌헌장부라면 딸아이 장래뿐만 아니라 우리 내외가
죽어서도 외손봉사를 받을 수 있겠어. 또한 내가 죽으면 내가 평생 일궈놓
은 전 재산을 잘 운영할 수 있을 거야. 말만 들었지 막상 바로 앞에서 보니
과연 영웅호걸의 풍모가 보이는 구나.
이런 훌륭한 청년이 곁에 있었는데도 내가 엉뚱한 곳에서 사윗감을 찾고
있었다니 내가 참으로 미련했어. 동고 그 사람이 사람 볼 줄 아는 안목 하
나는 탁월해. 이제 두 다리 쭉 뻗고 잠잘 수 있겠어. 흐흐흐흐......’ 방진과
홍씨 부인도 넋을 빼고 청년 이순신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혼례 날짜가 결정되고 덕담이 오가며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무르익어
가자 푸짐한 아침상이 들어왔다. 연꽃아씨는 친아버지 방진과 시아버지가
될 이정에게 공손하게 잔을 올렸다.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해 왔는지 연꽃아씨 하얀 손이 바르르 떨렸다. 방
진은 지난 열흘간의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니 울컥 하며 속에서 무언가 올
라올 것만 같았다. 청년 이순신은 연꽃아씨의 섬섬옥수를 바라보며 어젯밤
에 받은 피로 쓴 관저를 속으로 읊었다.
關關雎鳩(관관저구) 在河之洲(재하지주) 窈窕淑女(요조숙녀) 君子好逑(군자호구)
求之不得(구지부득) 寤寐思服(오매사복) 悠哉悠哉(유재유재) 輾轉反側(전전반측)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