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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씨부인전(5)

산마루금 2013. 3. 14. 09:38

 

 

 

 

 

 

 

 

 

             본 소설은 덕수이씨 가문에서 태어나신 聖雄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상주방씨

         가문의 연꽃아씨를 만나 혼인하고 장인 方震(방진)의 권고로 文科에서 武科로 전향하

         여 과거에 합격하는 기간 동안의 행적을 소설화한 작품입니다. 많은 愛讀 바랍니다. 

         본 소설은 2012 鶴山文學 겨울호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方氏夫人傳     

 

  

 

                                                    

                                                                                           - 저자 : 여강 최재효

 

 

  

                                                        5

 

 

  

   “영감, 순신이가 승낙할까요? 그 애 성정으로 봐서는 절대 그 댁 데릴사위로 들

어가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나 역시 순신이가 머슴살이나 다름없는 데릴사위로 들

어가는 것에 마음이 퍽 내키지 않아요. 우리 끼리 이럴 것이 아니라 순신이를 불러

그 애 의향을 들어 보는 게 어때요?” 변씨 부인은 남편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아들

이 방진의 사위가 되는 일에 흔쾌히 받아들였지만 조건이 데릴사위라는 것에 이내

마음이 착잡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대부가에서 데릴사위는 크게 흠이 되는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다

고 그리 퍽 기분 좋은 일도 아니었다. 한훤당 김굉필(金宏弼) 선생이나, 필선(弼善)을

지낸 초당 허엽(許曄) 그리고 회재 이언적(李彦迪) 선생 같이 조선에서 내로라하는 가

문의 유명한 자제들 역시 오랫동안 처가살이를 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기는 하다.

부부는 동상이몽이었다.

 

 이정은 아들이 데릴사위라도 상관없이 방진의 재력을 바탕으로 아들의 출세를

시키고 싶어 했고, 변씨는 참한 규수를 짝지어 주고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끝까지

뒷바라지하여 과거에 입격시키고자 하였다. 이정은 아들 순신을 불러 방진의 제의

를 전했다. 아비로써 아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일이란 그리 쉽지 않았다.

 

 행여 아들에게 떳떳하지 못한 제안을 하였다가 책잡히는 일이 벌어지면 정말로

난감한 상황이 될 게 뻔했다. 어머니 변씨 역시 아들이 어떤 대답을 할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데릴사위가 아니라면 정말로 좋은 혼처가 될 터인데 자식이 마치 재

물에 팔려가는 것 같아 변씨는 씁쓸했다.


 “애야, 요즘 네 선행이 마을뿐만 아니라 근동까지 아니지 아산에 소문이 나 있더

구나. 쉬엄쉬엄 하렴. 네가 과거를 앞두고 다른 데 너무 총기를 허비하는 게 아닌

아비는 걱정이 되는구나. 또한 벌써 성년이 되었으니 장가도 들어야 하고......”

이정은 아들에게 차마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오히려 아들의 눈치를

보았다. 곁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던 어머니 변씨가 답답한지 혼사 이야기를

냈다.


 “애야, 너 뱀골에 방대감댁 알지?”
 ‘방대감? 그렇다면 연꽃아씨 아버지 방진 어른을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이순신

은 방대감이라는 어머니 변씨의 말에 두 눈이 반짝거리면서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

렸다. '혹시 어머니께서 얼마 전 이슥한 밤에 방진의 집에 갔던 일을 아시고 물어

는 게 아닌가?’하고 불안해하였다.


 “네에, 어머니. 그 댁을 몇 번 지나치기는 했습니다만......”
 “어제, 그 댁에서 아버지를 초빙하였단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 댁을 가보니 한양

에서 영의정 이준경 대감이 내려와 계시더란다. 더 놀랄 일은 영의정 대감과 방대

감이 너를 방씨네 사윗감으로 점찍어 놓고 빠른 시일 내에 확답을 달라고 하는구나.

그 댁에는 과년한 무남독녀가 있는데 참으로 곱다고 소문이 자자하단다. 그래서

네 생각이 어떤지 알고 싶어 불렀다.” 변씨 역시 아들의 반응을 살피느라 말소리

가 점점 작아졌다.


 ‘아니, 그 댁에서? 연꽃아씨를 나와 부부의 연을 맺기를 원한다고? 이게 생시인

꿈인가? 천지신명님이 얼마 전 내가 야밤에 그 댁에 갔던 일을 아시고 도우시

려고 하는 것인가? 그리고 동고 대감이 직접 뱀골에 내려왔다면 이건 보통일이

아닌데?

 

 그분은 몇 해 전 내가 한양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인사를 올린 분 아닌가?

그럼, 그분이 그때 나를 한번 보시고 중매를 선다는 말인가? 아니, 우연일 수도

있겠지. 방대감과 친분이 있어 놀러 왔다가 우연히 아버님을 만났을 거야.’ 이순

신은 어머니 변씨의 물음에 잠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니, 얘야. 무얼 그리 골똘하게 생각하니?” 아버지 이정은 아들을 곁눈질로 보

면서 곰방대를 빡빡 빨아댔다. 아들이 대답을 하지 않자 어머니 변씨는 가슴을 졸

였다. 만약 싫다고 하면 아들 볼 낯이 없을 것 같았다. 이정은 헛기침만 하며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만약 이순신이 방진의 데릴사위가 되고 훗날 방진 내외가 세상

뜨게 되면 방진의 많은 재산은 아들 이순신에게 돌아오게 되니 꿩 먹고 알 먹

는 셈이 된다. 그러나 아들에게 방진의 데릴사위가 되라고 강요는 할 수 없는 일

이었다. 


 ‘아니야, 나와 연꽃아씨 사이에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있는 거야. 아마도 그

연의 끈은 누구도 어쩌지 못할 단단하고 질긴 밧줄과도 같을 거야. 아니라면

아산에서 제일 부자인 방대감이 먼저 아버지를 초대해 혼사 문제를 꺼냈을 리가

없어.’ 청년 이순신은 삼매경에 든 사람처럼 멍하니 방바닥만 쳐다보았다.


 “얘야, 싫으면 할 수 없고. 내일 사람 편에 방대감댁과 혼인할 의사가 없다고 기

을 넣으마.” 어머니 변씨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허허, 가만히 좀 있구려. 지금 저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이 아니오?" 이정은

행여 아들이 방진의 사위가 되는 것을 거부할까봐 불안했다.


 “아, 아닙니다. 어머니, 그 댁 규수라면 아산고을에서 모두가 탐내는 며느릿감

아닙니까? 소자에게 하루만 말미를 주세요.” 이순신의 아버지 어머니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얘, 그리고 방대감댁 사위가 되면 그 댁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고 하는구나.”

어머니 변씨는 간신히 말을 하고 눈치를 봐야 했다.


 “네에? 그럼 데릴사위란 말씀이세요?” 이순신이 놀라는 표정에 이정과 어머니

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도 잘 알다시피 지금 조정에서 권세를 잡고 있는 고관대작 중에도 오랫동안

가살이한 분들이 많단다. 시류가 그러니 데릴사위가 큰 흠이 아니다. 그러나

퍽 내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네가 출세하는데 가능하면 뒤에 받

쳐 줄 만한 힘이 있으면 좋지.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빌 것 아니겠니. 험험-”

이정은 곰방대를 쪽쪽 빨아대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애써 불편한 심기를 감추고

있었다.


 “얘야, 아버지 말씀대로 데릴사위는 크게 흠될 게 아니야. 나라님의 사위인 부

도 있잖니? 따지고 보면 부마도 데릴사위나 마찬가지지 않니?” 어머니 변씨

는 남편의 의견을 따라야 하기에 마지못해 한 마디 하고 아들이 싫다는 말을 꺼

낼까봐 가슴을 졸였다.

 

 아산뿐만 아니라 한양에서 조차 방진의 사위가 되기 위해 많은 양반댁 자제들이

줄을 서고 있다는 소문도 있는 터였다. 또한 방진의 문하생으로 장차 무과에 응시

하고자 하는 청년들도 상당히 많은데 그들 역시 스승인 방진에게 잘 보이려고 서

로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버님, 어머님, 소자 비록 아직 세상에 이렇다 할 공명은 없으나 장차 대과大

에서 급제하여 가문을 빛내고자 합니다. 소자, 방대감댁 사위가 되는 일에는

호감을 가지고 있으나, 데릴사위는 천부당만부당합니다. 그러니 이일은 없던 것

으로 해주세요. 소자, 혼인이 급하지 않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들이 방에서 나가자 아버지 이정과 변씨 부인은 넋이 나간 듯 한동안 멍하니

말문을 열지 못했다.


 “험험-” 이정은 애꿎은 곰방대만 사정없이 재떨이에 내리쳤다.
 “에구, 내 그럴 줄 알았지. 저 애가 비록 내 배에서 나왔지만, 조선 천지에 저 애

처럼 기백이 당당한 헌헌장부가 어디 있으려고.” 어머니 변씨는 아들이 일언지

에 거절하자 안타까움을 어찌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이 일을 어쩐다? 동고 대감과 방대감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순신의 아버지는 눈앞이 캄캄했다. 비록 자신이 낳은 자식이지만 떳떳하지 않

고 생각하는 일에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성격에 이정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

로는 데릴사위자리를 놓친다는 게 아까웠다.


 이순신의 두 형들은 아우가 방대감댁 청혼을 거절하였다는 말에 너무 아쉽고

타까운 나머지 자신들이 나서서 아우를 설득해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우의

고 강직한 성격을 잘 아는지라 한번 아니라고 하면 그 누구의 말이라도 절대

듣지 않는 아우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까 골몰했다.


 “아우야, 내가 판단하기에는 그 댁 어른이 영의정 대감과 동문수학한 사이라 친

분도 깊고 아우가 그 댁 사위가 된다면 출세에 크게 도움이 될 거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렴. 우리 사형제 중에서 아우라도 빨리 과거에 급제해 조정에 출사하여

조상님들 면목을 세워드려야 하잖니?” 큰형인 희신이 순신의 마음을 돌리려 하

였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래, 아우야. 형님 말씀도 일리가 있어. 우리가 오대조 이변 할아버지나 삼대

이거 할아버지처럼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조정에 힘 있는 사람과 인맥을

쌓는 것도 중요하고 권세 있는 인물들에게 선을 대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무

조건 싫다고만 할 것이 아니니 재고해 보거라” 둘째형 요신도 순신의 마음을 돌

리기 위하여 애를 썼지만 순신은 요지부동이었다. 


 “순신형님, 두 분 형님 말씀이 맞는 거 같아요. 이백록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 가

문은 변변한 벼슬을 하지 못해 지금처럼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우리 5남매가 초

에 묻혀 살아야 하는 거 잘 알잖아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어쩌면 하늘

이 다시 한 번 가문을 일으켜 세우라고 준 기회일지도 몰라요.

 

 비록 권문세가 힘을 빌려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어서 떳떳하지는 않지

만 지금 이런저런 거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우선 가문부터 일으켜 세

우고 볼 일 입니다.” 이순신의 아우 우신도 역시 침을 튀겨가며 형 순신을 설득

하였다. 그러나 순신은 형제들의 말에 불쾌한 기색을 보일 뿐 이렇다 할 대꾸

조차 없었다. 


 "오라버니, 저도 오라버니가 연화 언니랑 부부의 연을 맺기 바라요. 제가 몇

그 언니를 본적이 있는데 참으로 참하고 똑똑하며 어디 한군데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어요. 그 언니가 우리 집안에 들어오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오라버니, 그 댁에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주변에서 뭐라

고 욕할 사람 없어요. 오히려 오라버니를 부러워할 거예요. 그 언니 인품으로

보거나 행동거지로 볼 때 오라버니와 정말로 잘 어울릴 거라고 봐요.

 

 방대감님에게는 그 언니 한 사람 밖에 없으니, 오라버니가 그 댁 데릴사위가 되

어 조카들이 태어나고 오라버니가 잘 되면 그 집 모든 것이 다 오라버니 거가 되

는 거 아닌가요?" 이순신은 여동생의 당돌한 말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제일 애가 타는 것은 어머니 변씨였다. 지금의 살림으로 네 아들들 과거 공부를

뒷받침 한다는 일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는 하나 셋째

아들이 덕수이씨 가문에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큰 복을 제 발로 걷어 차버

리는 것 같아 애가 타기도 했다. 혼사문제로 집안이 침묵에 쌓였다. 이순신이 방

진의 혼인조건을 받아 들였다면 잔칫집 분위기가 되어 집안이 활기에 넘칠

것이었다.  


 ‘아니야, 나는 내 힘으로 당당하게 과거에 합격하여 조정에 출사할 거야. 데릴사

위로 들어간다는 것은 내 자신이 허락하지 않아. 오로지 내 힘으로 보란 듯이 출

를 할 거라고. 그러나 내 욕심만 낼 형편도 아니니 참으로 한탄스럽구나. 우리

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려면 지금의 부모님 힘으로는 너무 힘에 부치는 일

야. 그렇다고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남의 집 더부살이를 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너무 상하는 일이야. 


 연꽃아씨를 생각하면 당장 월곡 뱀골로 달려가 데릴사위로 들어가고 싶지만 그

것은 어쩌면 조상들을 욕보이는 일일지도 몰라. 아아, 데릴사위 조건만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꼬. 그날 밤 몰래 엿본 연꽃아씨를 반려자로 맞는다면 큰 행운일

텐데......’ 청년 이순신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날이 새면 아버지는

방진대감에게 청혼에 응하지 않겠다는 답신을 줄 것이고, 그리하면 영영 연꽃

아씨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청년 이순신은

가슴을 쳐야 했다.


 “뭐라고? 그 댁에서 우리 청혼을 거절했다고? 그게 사실이냐? 어디 내놔도 빠

지는 데가 없는 선녀 같은 내 딸을 마다하였단 말이냐? 그 댁이 제정신인가?”

아침 일찍 이정이 보낸 사람으로부터 기별을 받은 방진은 크게 낙담하였다. 방진

뿐만 아니라 연꽃아씨의 어머니 홍씨는 펄펄 뛰며 별 볼일 없는 가문에서 저절로

굴러들어온  복덩이를 찼다며 노발대발하였다.


 “아아, 천지신명님. 어찌, 어찌 이 소녀의 간절한 소망을 이리 짓밟을 수 있단 말

입니까? 소녀 무수한 날 밤을 지새우며 빌고 또 빌었건만 이리 허망하게 끝나다

니요? 소녀는 이미 마음으로 정한 바 있습니다. 선랑님께서 저를 싫다하시면 소녀

는 차라리, 차라리 이승의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겠습니다. 


 당장 저에게 달려올 줄 알았던 선랑님께서 저를 마다하였으니 소녀는 이제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어쩌다 그 분을 한번 뵙고 소녀가 마음을 빼앗겼는지 하늘이 야

속하기만 합니다. 아흐흐흐흐흐......” 아지로 부터 소식을 들은 연꽃아씨는 쏟아

져 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연꽃아씨가 울고 있다는 말에 방진과 홍씨 부인은 연꽃아씨에게 달려왔다. 딸의

흐느끼는 광경을 보자 방진은 가슴이 미어졌고, 홍씨 부인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여태껏 심한 말 한번 하지 않고 금지옥엽 키운 화초 같은 딸이었다. 아산에

서 내로라하는 권세를 부리던 방진이지만 청년 이순신의 청혼 거절에 집안이 초

상집처럼 변하자 방진은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감히, 감히 내 청혼을 거절하다니. 그 늙은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먼. 어제

는 희색이 만면하여 금방 혼사를 진행시킬 듯 했는데 하루 만에 거절하다니.

허허허허, 그것참. 별일이로구만. 도대체 그 이순신이란 청년이 그렇게 도도하고

예의를 모른단 말인가? 우리 상주방씨 하면 아산 제일가는 부호이며, 내 딸에게

청혼하려는 집안이 즐비하거늘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감히 내 딸을 마다해? 어디

두고 봐라. 너희들은 두고두고 후회할거다.” 방진은 너무 분해 눈시울이 붉어졌

지만 한편으로는 영의정 이준경의 중매를 거절한 청년 이순신을 만나보고

싶었다.


 ‘아니야, 이건 분명 꿈일 거야. 그럴 리가 없어. 꿈속에서도 수도 없이 뵙던 선랑

이었는데.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분명해 이건 꿈이야. 꿈이라고. 만약

이것이 꿈이 아니라면 선랑님을 찾아가 만나야 돼. 이대로 누워서 천정만 바라 볼

수 없어. 그러나 선랑님이 나를 만나주지 않으면 어쩌나. 만나주지 않으면.

으흐흐흐 흐흐흐.....’ 닷새가 지나도록 연꽃아씨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자리

에 누워 꼼짝하지 않았다. 


 아침이슬 맞은 한 떨기 백합 같던 연꽃아씨가 이순신에게 청혼을 거절당하자

몸져누웠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내심 청혼이 성사되지 않기를 바랐던 가

문에서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이전에도 여러 번 매파를 방진에게 보냈지만 번번

이 거절당한 후라서 이번에야 말로 다시 매파를 보내면 금방 혼인이 성사될 것

같았다.

 

 실제로 여러 가문에서 방진의 집에 매파를 보냈지만 욕만 먹고 쫓겨나기 일쑤

였다. 또 사나흘이 야속하게 흘렀다. 연꽃 아씨는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종

지에 모은 뒤에 편지를 썼다. 연꽃아씨는 선홍색 피로 쓴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속으로 울었다. 연꽃아씨는 하루가 여삼추였다.  


 “아지야, 외출할 차비를 하거라.”
 “네에? 아씨, 제 정신이세요? 아씨, 여러 날 동안 아무것도 들지 못하고 누워만

계시어 잘 걷지도 못하시면서 어디를 가시게요? 땅거미가 내려앉았어요.” 아지

는 연꽃아씨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쳐댔다. 연꽃아씨는 정신이 몽롱하

여 혼자 힘으로는 열 발자국도 걷지 못할 상태였다.


 “집안사람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 알았지? 어서 나를 일으키고 앞장서.”

 “아씨, 정말로 외출하시게요?” 연꽃아씨는 아지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자리

에서 일어났다. 장옷을 푹 뒤집어쓰고 집을 나온 연꽃아씨는 백암을 향해 천근

같은 발걸음을 옮겼다. 들녘을 지날 때마다 개구리들이 목청을 키우며 와글거

렸고, 산에는 장끼와 까투리들이 짝짓기를 하는지 이따금 조용한 산촌의 적막을

깼다. 아지는 비틀거리며 걷는 연꽃아씨를 부축하며 걷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얼

른 연꽃아씨 앞으로 나서서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아씨, 안되겠어요? 열흘 동안 곡기를 끊고 겨우 물 몇 모금으로 버티셨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쓰러지시겠어요. 대감마님이 아시면 이년은 죽은 목숨이네요.

제발, 다시 집으로 돌아가세요. 아씨......” 아지가 아무리 매달려 보았지만 연꽃

아씨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앞만 보고 걷기만 했다.


 ‘아아, 선랑님, 소녀를 버리시나요? 단 한 번의 눈 맞춤이었지만 소녀는 선랑님

시선에 사로잡혀 한해가 넘도록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청

혼에 득달같이 달려오실 줄 알았는데 거절하시다니요? 저는 알아요. 선랑님께서

저희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와야 한다는 데에 크게 마음이 상하신거죠? 


 데릴사위 아니면 어때요? 소녀가 선랑님 댁으로 민며느리로 들어가도 된답니다.

마음이 중요하지 풍습과 격식이 뭐가 그리 대단한지요? 저는 선랑님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미 제 마음을 가져가셨는걸요? 오늘밤, 선랑님의 언약을 받아내지 못

하면 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연꽃아씨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들길을 걸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 배우고 때에 맞추어 익히니 기쁘지

아니 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 벗이 멀리서 찾아오

니 또한 즐겁지 아니 한가?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참으로 군자가 아니겠는가?

 

 농번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마을 소년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청년 이순

신은 정성을 다해 논어 ‘학이편(學而編)’을 가르치고 있었다. 낮에는 이순신을 비롯

한 사형제들이 들에 나가 이웃들 일손을 덜어주었고 밤이면 무지몽매한 산촌 사람

들은 상대로 계몽활동의 일환으로 공부를 가르치며 누구나 열심히 일하고 배우면

 잘 살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사람으로 태어나 문자를 모르면 개, 돼지와 같습니다. 개, 돼지는 사람이 주는

먹이를 먹고 살면서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거나 고기를 주인에게 바칩니다. 여러

분이 비록 산촌에 태어나 빈한하게 산다고 하여도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면 반드시

크게 쓰일 기회가 옵니다. 집이 가난하다고, 가진 게 없다고 배우기를 포기한다면

여러분의 미래는 없습니다. 


 이 조선이 양반과 상놈으로 나뉘어 있지만 여러분이 항상 깨어 있으면 권세 많은

양반이나 호랑이가 찾아와도 전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하

며 여러분의 눈이 뜨일 때 까지 학습에 매진하겠습니다.” 학동들에게 청년 이순신

은 희망의 꿈을 심어주었다. 그 꿈이 당장은 이루기 힘들겠지만 순신의 가르침은

언젠가는 조선의 앞날을 밝게 해줄 새싹들에게 단비와도 같았다. 고을 현령들의

렴주구가 횡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꾸만 움츠려 들면 들수록 벼슬아치들의

횡포는 더할 것이라는 것을 청년 이순신은 잘 알고 있었다.


 “아씨, 저기, 저기 그 선랑님의 서당이 보여요. 불이 환한 것을 보니 지금 마을

사람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계신가 봐요?” 아지가 수선을 떨며 서당을 가리켰

다.
 ‘아, 선랑님, 보고 싶어요. 오늘은 정녕 뵙지 못하면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연꽃아씨는 곱게 접은 붉은 서신을 아지에게 건넸다. 


 “아지야, 이 서신을 꼭 선랑님에게 전해야 한다. 절대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면

안 된다. 알았지?” 아지가 편지를 받아들고 신이 나서 서당을 향해 뛰어갔다. 아

지가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연꽃아씨는 또 가슴을 졸였다.

 

 만일 이순신이 편지를 받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헛걸음한 꼴이 될 뿐만 아

니라 부끄러워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아 불안하였다. 아버지 방진과 어머

니 홍씨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불호령이 떨어지고 가문을 망신 시켰다고 크게

실망할 것이 분명했다. 연꽃아씨는 숨이 가빠지기 시작하면서 금방이라도 쓰러

질 것만 같았다. 


 ‘선랑님, 제발 소녀를 살려주시어요. 소녀의 간절한 마음을 받아주세요. 천지

신명님, 선랑님이 소녀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제발요.’ 마침

반달이 배시시 웃으며 산촌을 환하게 밝혔다. 연꽃아씨는 달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편지를 보고 순신이 나오기를 애가 타도록 빌고 빌었다. 그렇게 얼마를

빌었는지 모르지만 아지가 헐레벌떡 뛰어오면서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잘 알

아들을 수 없었다.


 “아씨, 아씨, 오세요.”
 “뭐라고? 누가?”
 “누구긴요? 아씨가 꿈에 그리시던 그 선랑님이시죠.” 아지의 숨이 넘어갈 듯

했다. 아지와 십여 걸음 뒤로 헌헌장부가 뿌옇게 달빛에 젖은 채 걸어오고 있었

다.


 “아아, 선랑님, 천지신명님, 달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청년 이순신의 모

을 확인하는 순간 연꽃 아씨 고운 두 뺨에 뜨거운 액체가 흘러 내렸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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