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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씨부인전(3)

산마루금 2013. 3. 14. 09:32

 

 

 

 

 

 

                   본 소설은 덕수이씨 가문에서 태어나신 聖雄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상주방씨

             가문의 연꽃아씨를 만나 혼인하고 장인 方震(방진)의 권고로 文科에서 武科로 전향하

             여 과거에 합격하는 기간 동안의 행적을 소설화한 작품입니다. 많은 愛讀 바랍니다. 

             본 소설은 2012 鶴山文學 겨울호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方氏夫人傳    

 

 

 

 

 

 

                                                     

                                                                                                                                          - 저자 : 여강 최재효

 

 

 

 

 

                                                                                    3

 

 

 

  

 “자자, 원길(原吉), 한 잔 하시게나. 이게 얼마만 인가? 그동안 너무 격조했으이.

오늘밤 내 자네하고 인사불성이 되도록 한번 마셔볼 참이네. 이년들 술값하고 행하

채는 내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마시세.” 춘삼월 아산의 갑부인 방진은 한양 다

동(茶洞)에서 내로라하는 주루에서 동문수학이며 세상에서 속내를 터놓고 이야길 할

수 있는 단 하나 밖에 없는 벗인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영의정 동고(東皐) 이준경(李浚

慶)을 만났다.


조선 조정의 최고 실권자인 이준경은 침착하고 빈틈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할아

버지는 성종임금의 어명을 받들어 연산군의 생모 폐비윤씨(廢妃尹氏)에게 사약을 가

지고 갔던 이세좌(李世佐)라는 사람으로 이조판서와 예조판서를 지내며 한 세월을

주름잡던 인물이었다. 연산군이 지존이 되고 친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며

벌어진 갑자사화 때 이세좌는 삼족이 멸하는 비극을 당했는데 그 와중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져 후일 영의정에 오른 인물이었다.


 “하하하하......, 자네가 아산에서 달려와 나에게 술을 사는 걸 보니 어지간히 급

한 일이 있는 게로 구만. 자네는 내 손님이니 오늘 이 자리는 당연히 내가 알아서

해야지. 자네 일가붙이 벼슬 청탁만 빼고 내 뭐든지 들어줌세.” 영의정 이준경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옆에 앉은 기생 허벅지를 주물렀다.


“허허허허....., 내가 명색이 아산에 토호이며 보성군수까지 지낸 처지로 아무려면

조정의 녹을 먹는 자네 술을 얻어먹겠나?” 방진은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준

경의 비위를 맞추었다. 함께 동문수학한 처지이지만 이준경은 날아가는 새도 떨어

뜨리는 조선 조정을 대표하는 영의정의 신분이었다. 그런 영의정에게 아산의 토호

방진이 찾아 온 것이다. 두 사내는 금준미주에 산해진미와 한양 제일가는 기루에서

해어화를 옆에 끼고 회포를 풀고 있었다.


 얼핏 보아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두 사람이지만 두 사람은 오랜 세월 친형제처

럼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방진은 벗에게 마음의 선물을 했고

답례로 이준경은 아산에 직접 내려와 방진의 집에서 수일씩 기거하며 자신이 방진

의 벗이며, 방진이 아산 최고의 부호이며 한양에 든든한 배후가 있는 아산의 실세

임을 은연중에 자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방진이 비록 전라도 보성지방 군수를

역임했고 아산에 거주하고 있지만 그는 무인의 기질을 타고난 활의 명인이었다.


 조정에서도 방진의 활솜씨는 알아주는 터라 조선 최고 명궁名弓에 이름이 오르내

릴 정도였고, 그의 휘하에는 장차 무과를 앞둔 한양의 이름 있는 가문의 자제들이

대거 문하생으로 등록 되어 있었다. 이미 그의 문하에서 무과에 시험에 합격한 자

들도 있었다. 두 사람은 잔을 맞대고 통음하며 지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즐거워하였

다. 술이 어느 정도 거나해지자 기생이 가야금을 탄주하였다. 두 사내는 노랫가락

에 맞춰 어깨를 들썩거렸다.


 “원길, 실은 내 부탁이 하나 있어 왔네.” 기생이 노래를 멈추고 술을 따르자 방진

이 먼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혹시 누가 들을까 방진은 기생들 눈치까지 보았다.

 “허허허허......, 아무렴 자네가 괜히 한양에 왔겠나? 무엇이든 말해보세나. 내 자

네 청을 한번 들어보지.” 이준경은 잔을 비우더니 빙그레 웃었다.


 “자네도 잘 알다시피 내 후사가 없지 않나. 아니지 딸 하나 있긴 한데 아무래도

우리 부부 노후와 사후가 불안하이. 그래서......” 자존심 강한 방진의 눈빛이 무엇

인가 갈구하고 있었다.
 “자네 나이가 그리되었는가? 하긴 가만 보니 우리가 벌써 그리되었네 그려. 자네,

사윗감을 고르고 있나보이?” 이준경의 미간이 좁아지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내 그 동안 아산고을에서 내로라하는 가문의 자제들을 알아보았지만 내 딸을 맡

길 만한 인물을 발견하지 못했네. 자네가 괜찮은 가문의 자제를 소개해 주시게. 잘

만 되면 내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하겠네. 딸 아이 나이가 열아홉일세.” 방진은 다급

해 보였다. 이준경은 방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방진이 숨을 죽여 가며 벗의 입이 열리기를 고대하였다. 이준경이 얼마나 뜸을
들이는지 방진은 답답한 심정을 연신 술로 달래고 있었다. 방진이 기생에게 눈짓
을 하자 기생이 가야금을 뜯으며 목청을 높였다.

 

 

 

     가시리 가시리 잇고 날 버리고 가시리 잇고 위 증즐가 태평성대 / 

     날러는 어찌 살라고 바리고 가시리 잇고 위 증즐가 태평성대 /

     잡사와 두어리마는 선하면 아니올 세라 위 증즐가 태평성대 /

     서운님 보내옵나니 가시는 닷 도셔오쇼서 위 증즐가 태평성대

 

 기생의 노래가 얼마나 간드러지면서 감칠맛이 있는 지 옆에서 듣는 사람 애간장

이 모두 녹아내릴 정도였다. 이준경은 기생의 노래가 끝날 때 까지 눈을 감고 있었

다. 방진이 킁킁 거리며 큰 기침을 했지만 이준경은 마치 참선에 든 수도자의 모습

으로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방진이 술잔을 세 번이나 더 비우고 나니 이준경

이 한숨을 길게 내쉬고 눈을 번쩍 뜨고 방진을 노려보았다.


 “자네, 차비인소위(此非人所爲)‘를 해석해 보시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던 이준

경이 불쑥 이상한 말을 했다. 그러자 방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네, 나를 무학으로 보시는가? 그건 ‘ 이는 사람이 할 바가 아니다.’라는 뜻 아닌

가?” 방진은 한참 동안 이준경이 무엇인가 골똘하게 생각하기에 한양에서 내로라

하는 좋은 가문의 자제를 천거할 줄 알았다가 뚱딴지같은 소리에 무척 섭섭해 했

다. 방진은 갑자기 이준경이 왜 그런 말을 꺼내는지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자네, 말일세. 내가 지금 추천하는 가문의 자제에 대하여 추호도 토를 달지마시

게. ‘그렇게 하겠다’고 나에게 약조해 줄 수 있겠나?” 이준경은 몇 번이고 방진에게

확약을 받아내기 위하여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그만큼 그가 추천하려는 가문의 자

제는 당대의 최고 가문의 자제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방진은 마른 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준경에게 감사해 하는 눈치였다.


 “아니, 이 조선 천지에 영의정이 추천하는 사윗감을 두고 두 말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내 약속함세. 자네가 어떤 가문의 자제를 소개하든 내 아무 말도 하지 않

겠네.” 방진은 눈에 힘을 주며 이준경에게 믿음을 주고 있었다. 방진은 드디어 무

남독녀 딸이 한양의 내로라하는 당당한 사대부가의 며느리가 된다는 기쁨에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이준경은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 우찬성, 병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

면서 임금뿐만 아니라 인순왕후 심(沈)씨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의 말은

곧 상감의 말이나 같을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조정 대신들도 이준경의 말에

감히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준경은 또 방진의 애를 태우느라 뜸을 들였다.


 “아니, 이보시게 어느 가문의 자제인데 이리 뜸을 들이시는가? 답답하이. 어서 말

씀해 보시게. 속이 타 죽겠으이.” 방진은 술잔을 들었다 놨다하며 안절부절 못하였

다. 옆에 앉아 있던 기생들이 방진의 모습을 보고 키득거리기도 하였다.


 “자네가 조금 전에 해석한 차비인소위(此非人所爲)의 뜻은 틀렸네. 나도 얼마 전까

지는 자네같이 그 글귀를 그렇게 해석하였었지. 그러나 난 그 청년의 해석을 듣고

무릎을 쳤네. 지금도 상감 앞에 나가 경연하는 엉터리 학사들도 그 글귀를 우리처

럼 해석하고 있을 걸세.” 이준경은 점점 알 수 없는 말로 방진을 어리둥절케 했다.


 ‘아니, 이 친구가 영의정이 되더니 사람이 달라졌나? 사윗감을 소개해 달랬더니

점점 알 수없는 말만 하니 원.’ 방진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앉은 기

생 엉덩이를 주물러 댔다.
 “아니, 이보시게 원길. 그럼 그 글귀의 뜻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방진이 떨

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 글귀는 통감 제 삼권에 나오는 말로 한나라 혜제(惠帝) 어머니인 여후(呂后)의 악

행에 대하여 소개한 글에 나오는 말일세.” 이준경이 거드름을 피우며 술잔을 홀짝

거렸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 한고조(漢高祖)의 정비(正妃)인 여후(呂后)는 유방에게 설움

을 많이 받은 여인이었다. 유방은 자신이 한나라를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아

내 여후를 거들떠보지 않고 후궁인 척부인(戚夫人)을 총애하였다. 유방이 죽고 나자

여후의 아들이 유방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니 그가 한나라 제2대 황제인 혜제가 된

다. 남편 생전에 천대를 받았던 여후는 척부인에게 복수를 한다. 척부인의 사지(四

肢)를 잘라 소변 통에 던지고 척부인의 두 눈을 파내 버린다.


 그것도 모자라 여후는 척부인을 분뇨 통에 집어넣고 궁녀들로 하여금 인치(人痴)

즉, 인돼지라 부르게 하며 밥도 입으로 먹게 했다. 모후(母后)의 비인간적인 소행을

두고 성품이 착한 아들 혜제는 ‘차비인소위’라고 중얼거렸다. 통감에 기록된 이 내

용을 두고 문사(文士)들은 ‘이는 사람이 할 바가 아니다’라고 틀에 박힌 해석을 해왔

다. 이준경이 서너 해 전에 한 서당을 지나다가 어떤 청년이 이 대목을 두고 해석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차비인소위라는 글귀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는 사람이 할 바가 아니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 되었다. 이 문장은 ‘이는 사람이 할 바가 아니

라’라가 아니라 ‘이는 사람에게 할 바가 아니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여러분이 알다

시피 한나라 혜제가 어머니인 여후의 만행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이 한 말인 바, 만

약 예전처럼 해석을 한다면 이는 큰 불효를 짓는 일이 된다.


 사람이 할 바가 아니라면 개돼지 같은 짐승을 이르는 말 아닌가? 따라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잘못 해석한 이유는 ‘이’와 ‘에게’의 쓰임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사

람이’라면 자신을 낳은 여후를 말하는 것이고, ‘사람에게’라고 하면 척부인을 말함

이니 어찌 자식이 어머니에게 개돼지 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당대의 최

고 문사이며 우이정인 이준경은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를 듣고 마을의 어린 학동을

가르치는 청년의 외모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과연, 과연 저 청년의 말이 백번 지당하도다. 나 역시 지금까지 그리 해석을 하

지 않았던고? 아아, 부끄럽도다. 저 청년의 관상을 보니 장차 이 나라 조선을 떠받

칠 동량지재로 왕후장상의 상이로다. 내 과년한 여식이 있다면 저런 청년을 사윗감

으로 하련만......’ 이준경은 그 청년의 정체가 궁금하여 서당 안으로 들었다.


 청년은 우의정 이준경을 몰랐다. 마침 한 학부형이 서당에 들렀다가 이준경을 보

자 넙죽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제야 청년은 미처 알아보지 못하여 죄송하다고 말

하고 인사를 올렸다. 곧 만인지상인 영의정에 오를 이준경이 서당에 들어올 줄 상

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청년은 이준경을 보며 언젠가는 자신도 이준경처럼 당당하

게 조정을 대표하는 높은 관리가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덕수이씨 자손으로 자는 여해고, 이름이 순신(舜臣)이라? 오호, 과연, 과연 갑족의

후예로다. 그대 아비가 정(貞)이고 조부가 백록(百祿)이라 했던가?” 이준경은 청년의

조부의 이름을 듣더니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지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어쩐지 이 청년에게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청년의

5대조 할아버지 이변(李邊)은 세종 임금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제학을 거쳐

정1품 영중추부사를 지내고, 3대조인 이거(李?)는 성종 임금 시절 문과급제 하여 연

산군이 세자시절에 스승을 지냈으며, 사헌부 장령을 거쳐 정3품 병조참의를 지낸

분이 아니던가?

 

 

 그러나 할아버지 백록부터 가세가 형편없이 되었어. 참으로 안 된 일이야. 그런

데 이 청년의 기상을 보니 가문을 크게 일으킬 영재가 틀림없어.’ 이준경은 청년

의 조부 이백록과 한때 공부를 같이했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 이준경은 서당을

나서면서 청년 이순신에게 더욱 정진하라고 당부하였다.


 “그래, 그 청년이 그리 총명해 보이던가? 그러나 나는 현재 자네처럼 왕후장상

은 아니지만 한양에서 덕망 있고 내로라하는 가문의 자제를 원하고 있네. 자네가

말하는 그 이순신이라는 청년의 아비가 지금 내가 사는 이곳 뱀골에서 멀지않은

백암리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 몇 해 전 우연히 아산 현감이 초빙한 잔치

에서 우연히 그 청년의 아비를 한번 본적이 있었네. 예전에는 아무리 잘나가는 집

안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다 기울어가는 가문인데 뭐 볼게 있겠는가?

 

 

 그 청년 말고 내 딸과 우리 부부의 후사를 맞길 괜찮은 가문의 자제를 추천해 주

시게.” 방진은 이준경이 추천한 청년 이순신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적어도 조정

에서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하는 가문의 자제를 원하고 있었다. 덜 익은 감씹은 우

거지상을 하고 있는 방진을 보자 이준경은 무슨 말로 벗을 설득할까 고민하였다.

 
 “이보시게 방진이, 자네 방금 전에 나하고 약조하지 않았는가? 내가 추천하는 자

네 사윗감에 대해 아무런 토를 달지 않겠다고 말이야. 지금은 그 이순신이라는 청

년의 가문이 약간 어려운 처지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네에게 크게 실망했으이. 나

는 자네가 내 동문수학한 벗이기 이전에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세속의 욕망 보다 미

래의 이상을 볼 줄 아는 큰 안목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네. 내가 사람을 잘

못 보았나 보이.” 도리어 이준경이 방진의 사람 됨됨이를 탓하자 방진은 얼굴이 벌

겋게 상기되어 어쩔 줄 몰랐다.


 “이보시게 원길, 난, 난 자네가 적어도 조정에 출사하는 고관의 자제를 추천해 줄

줄 알았네. 나 역시 자네에게 실망이 크이. 나는 외손봉사를 받아야 할 입장이라네.

적어도 당상관 이상 가문과 인연을 맺고 싶었네. 그런데 몰락해가는 잔반(殘班)인 이

정의 자식이라니. 참으로 내 한양에 헛걸음을 했으이.” 방진은 이준경에게 더 이상

사윗감을 추천해 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술만 마셔댔다.


 “집사는 백암고을에 사는 이정과 아들 이순신이라는 자에 대하여 소상하게 알아

보고 나에게 보고하도록 하라. 그 청년의 현재 하는 일과 사람 됨됨이 주변 사람들

평판까지도 세밀하게 알아보고 그의 형제들과 그 어머니도 알아보도록 해” 한양에

가서 이준경에게 사윗감을 추천받으러 갔다가 크게 실망한 방진은 도대체 이순신

이라는 청년이 어떤 인물이기에 영의정 이준경이 그리 침이 마르도록 천거하는지

몹시 궁금해 했다.


 방진은 집사에게 이순신을 알아보라는 명을 하고도 모자라 자신이 직접 근동을

돌며 청년 이순신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였다. 마침 딸이 사랑채로 아버지 방진
의 내의와 버선을 가지고 들어왔다. 방진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딸의 정숙한
자태와 기품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침 이슬을 흠뻑 맞은 한 떨기 도화(桃花)
처럼 고운 자태의 딸에게 빨리 짝을 찾아주어야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애야, 마침 잘 왔구나. 거기 좀 앉아라.”
 “아버님, 소녀에게 무슨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세요?” 연꽃아씨의 반짝이는 두 눈

에서 금방이라도 수정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애야, 혹시 백암 고을에 산다는 이순신이라는 청년을 아느냐?” 방진은 꿈에도 자

신의 딸이 백암 고을에 사는 이순신이라는 청년을 알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넌지시 물었다.


 “네에, 약간은......” 연꽃아씨는 도둑질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두 뺨이 빨갛게 물

들었다. 아버지 방진이 이미 자신이 지난해 늦가을에 순신을 찾아갔던 사실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조바심하며 겨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하였다. 연꽃아

씨는 순간 아지가 아버지에게 지난해 백암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고해바친 게 틀림

없다고 생각했다. 연꽃아씨 고개가 더 깊이 숙여졌다.


 “네가 그, 그 이순신이라는 청년을 안다고? 어떻게 집안에만 있는 네가 백암에

사는 그 청년을 알고 있단 말이냐? 이 아비에게 소상히 말해 보아라. 네가 그 청년

을 안다고 해서 아비가 너를 야단치려는 게 아니란다.” 방진은 의외라는 시선으로
두 뺨이 빨갛게 달아오른 딸을 뚫어져라 쏘아보았다.


 “아버님, 지난해 설날에 동네에서 젊은 패들이 벌이는 윷놀이가 있었어요. 그때

그 선랑을 먼발치에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소녀의 가슴에......” 연꽃

아씨는 가슴을 잡고 간신히 말하고 있었다.


 “그랬구나. 그때 네가 본 그 청년의 모습이 어떻던? 네가 그 청년을 선랑이라 부

르는 것을 보니 헌헌장부가 틀림없는가 보구나. 허허허허......, 네가 집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밖에도 관심이 많았던 게로구나. 괜찮다 괜찮아 요즘은 예전보다 많

은 여인네들에게 대담하게 정인(情人)을 직접 고르거나 만나는 일이 많아졌다. 이

아비는 그런 일이 큰 허물은 아니라고 본다.” 방진은 딸이 곤란해 할까봐 빙그레

웃음을 지어가며 안심시켰다. 방진은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이 없는 딸을 지그시

보면서 영의정 이준경의 말을 떠올렸다.


 ‘왕후장상의 상을 타고 났다고 했지. 그러나 현재의 그 청년의 아비는 백수나 다

름없지 않은가? 그자가 벼슬이라도 하고 있으면 좋으련만. 그 청년이 어떻게 생겼

기에 이 아이가 마음을 빼앗겼을까. 선랑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이 아이가 그 청

년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인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연꽃아씨는 이순신에

대하여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당황해 했다.


 “아가, 괜찮다. 네가 본대로 이 아비에게 말해보렴. 아비도 지금 네 배필을 구하러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다니는 중이란다. 얼마 전에는 네가 알다시피 아비가 한양에

도 다녀오지 않았니? 그때 이준경 대감을 만나서 네 배필감을 부탁했더니 이순신

이라는 청년을 소개하더구나. 그 청년이 장차 크게 될 인물이라고 하면서 그 청년

자랑에 침을 튀기더구나.” 아버지의 말에 용기를 얻은 연꽃아씨는 콩닥거리는 가

슴을 진정시키고 가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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