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루금
[스크랩] 홍도에 결코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섬, 가거도(`11.10.30) 본문
가거도 독실산(犢實山, 639m)
산 행 일 : ‘11. 10. 30
일 정 : 10.30(일) 06:30 홍도 출발
08:00-13:00 가거도 도착 및 독실산 등반
산행코스 : 대리항→하늘공원→달뜬여→벙커→삿갓고개→독실산→임도→대리항(산행시간 : 3시간20분)
함께한 산악회 : 정산악회
특징 : '가거도'의 다른 명칭인 '소흑산도'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의 명칭(名稱)이다. 옛날에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嘉佳島, 可佳島)로 불리다가 '가히 살만한 섬'이란 뜻의 '可居島'로 불리게 된 것은 1896년부터라고 한다. 마을은 1구 대리, 2구 항리, 그리고 3구 대풍리 등 3개의 자연부락으로 되어 있는데 인구는 약 400여명, 그 중 대부분은 1구인 대리에 모여 살고 있다. 주민(住民)들의 주요 수입원(收入源)은 어업(漁業)인데, 찾아오는 관광객(觀光客)들이 늘어나면서 요즘에는 민박집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 홍도를 출발한지 1시간30분 쯤 되면 가거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잠잠하던 바다가, 가거도에 가까워지면서 파도(波濤)가 점점 거세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탄 배는 높은 파도를 따라 춤을 추고,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기 시작한다. 얼굴색이 하얗게 질린 것을 보면 아마 뱃멀미를 참을 수 없나보다. 고개를 돌려본다. 다행이 집사람은 멀미기색이 없다. 멀미약을 마시고, 거기에다 귀미테까지 붙인 효과가 있나보다. ‘조금만 참으세요. 5분 후면 항구에 도착합니다.’ 남해 퀸‘ 선원(船員)의 안내에 모든 승객들의 희색(喜色)이 완연(完然)해진다.
▼ 높은 파도를 뚫고 들어온 가거도 대리항은 예상과 달리 물결이 잔잔하다. 바다라기보다는 하나의 호수(湖水)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잔잔한 수면(水面)과는 달리 방파제(防波堤) 위에는 지난번 태풍 때 망가진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이 방파제를 만드는데 27년이나 걸렸다고 하는데, 이번에 보수할 때에는 어떤 태풍(颱風)에도 끄떡없도록 튼튼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 배에서 내려 전면에 보이는 절개지(切開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거대한 절개지에 지그재그로 나 있는 오름길은 나름대로 운치(韻致)가 있다. 이 절개지는 방파제(防波堤)를 만들면서 개발한 석산(石山)의 한 면(面)에 등산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절개지 밑은 가거도의 명물(名物)인 동개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의 몽돌 해변(海邊)과 그 끄트머리에 있는 ‘마법의 성’처럼 우뚝 솟아오른 바위가 무척 인상적이다.
▼ 절개지(切開地)를 오르면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다. 이정표 너머로 대리항과 회룡산의 바위봉우리들이 절묘(絶妙)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삼거리에서 조금 더 오르면 만나게 되는 전망대(展望臺)에 올라서면 한층 더 뛰어난 조화를 맛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風景)은 마치 잘 그린 한 폭의 산수화(山水畵)처럼 뛰어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절개지 위는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새하얀 억새꽃들의 군무(群舞), 육지에서 만나게 되는 억새꽃 명산들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면서도, 화려하게 피어있다. 바람 부는 대로 춤추는 억새 사이로 난 길을 걸어 오른다. 어른 키보다 큰 억새 춤에 동화되어버린 듯, 내 몸도 저절로 따라 흔들린다. ‘벌써 가을이 깊어가는구나.’ 가을이 몸과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 가거도의 전체 면적(面積)은 여의도와 엇비슷하다. 그런 작은 섬인데 한복판에 해발(海拔) 639m에 이르는 독실산이 우뚝 서있다. 서울 남산보다 2.4배 이상 높을뿐더러, 다도해 해상국립공원(多島海 海上國立公園)에 있는 수많은 산봉우리들 중에서 가장 높다. 그러니 가거도는 평지가 있을 수 없다. 바다에서 바라보면 가거도는 하나의 산으로 보인다. 이는 섬과 독실산이 하나라는 얘기이다.
▼ 억새밭을 지나고 나면 산길은 숲속으로 이어진다. 숲은 후박나무,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참식나무 등의 상록수(常綠樹)들로 울울창창(鬱鬱蒼蒼)하다. 이정표가 세워진 곳에서 해뜰목을 가는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방향을 튼다. 후박나무와 동백나무들이 하늘을 뒤덮은 숲 길을 가파르게 올라서면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고 있다. 고개를 내밀어 본다. 안내판 넘어 저만큼에 해뜰목이 내려다보인다. 이곳을 달뜬목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 달뜬목에서 독실산으로 길게 이어지는 능선은 결코 지루할 틈이 없다.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가 하늘을 뒤덮고 있는 숲길은 청량(淸凉)하기만 하고, 심심찮게 나타나는 바윗길은 긴장감을 떨쳐낼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러다가 간혹 나타나는 조망대에라도 올라설 것 같으면, 저 만큼 멀리 해안선에 빈주암 절벽(絶壁)이 위풍당당(威風堂堂)하게 버티고 있다.
▼ 문짝이 떨어져나간 채로 방치되어 있는 벙커지역을 지나면 삼거리가 나온다. 체력(體力)이 약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된다. 대리항(港)으로 내려가는 탈출로이기 때문이다.
▼ 가거도를 종주하다 보면 후박나무가 흔하게 보인다. 후박나무 껍질은 건위(健胃), 강장(强壯)에 특효가 있는 한약재로 쓰이고, 말린 후박피를 끓여서 보리차처럼 마시면 천식 같은 호흡기질환이나 소화불량(消化不良)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가거도에서 생산하는 후박피 양이 국내 전체 생산량의 70~80%를 차지하고 있으니, 가거도 주민(住民)들의 생계(生計)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다.
▼ 삼거리를 지나도 지나온 길과 다름없는 느낌의 산길이 이어진다. 후박나무 우거진 상록수(常綠樹) 숲은 짙은 녹색으로 빛나고 있고, 해안(海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거세기만 하다. 간혹 나뭇가지 사이로 열리는 하늘은 한없이 푸르고, 슬며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바다는 쪽빛으로 빛나고 있다. 어쩌다가 보이는 길쭉한 해안선에는 가파른 해안절벽이 병풍(屛風)처럼 펼쳐지고 있다.
▼ 기나긴 능선이 끝나면 대리에서 대풍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인 시멘트포장 임도(林道)가 나타난다. 삿갓재이다. 임도는 이곳에서 삼거리를 만들고 있는데,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대항리로 가게 되고, 곧바로 진행하면 독실산 정상이 있는 군부대(軍部隊)까지 연결된다. 삼거리를 지나 10m정도 더 올라가면 왼편에 희미하게 등산로가 보이나, 구태여 산길로 접어들 필요는 없다. 등산로도 희미할 뿐더러, 거칠고 험하기만 할뿐, 볼만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왼편 등산로를 따라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또다시 군부대로 오르는 임도와 만나게 된다. 임도를 따라 곧장 올라왔더라면 거친 산길에서의 고생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철문(鐵門)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해군(海軍)의 시설물인 ‘가거도 레이더기지’이다. 문 옆에는 ‘독실산 하늘별장’이라는 나무간판이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하늘 별장’이란 이곳 레이더기지의 애칭(愛稱)이란다. ‘정산악회에서 오셨나요?’ 누군가가 미리 조치를 취해 놓았는지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軍人)이 친절하게 독실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가르쳐 준다. 독실산 정상은 군부대(軍部隊) 안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 군부대로 들어서서 우측에 보이는 계단(階段)을 따라 조금 오르면 이내 독실산 정상이다. 정상에도 군시설(軍施設)이 자리하고 있고, 그 곁의 바위 위에 독실산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시설을 지키고 있는 군인이 친절하게도 카메라 셔터까지 눌러준다.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바위는 좁기 때문에, 옆에 있는 건물의 옥상이 조망대(眺望臺)를 대신하고 있다. 대풍리 방향에 빈주암 절벽(絶壁)이 또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 독실산 정상에서 내려와 군부대(軍部隊)의 정문을 나선 후에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곧장 걸어 내려 가야한다. 아까 지나왔던 대항리 갈림길을 지나서 한참 더 걸어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항리마을에 닿게 된다. 또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5분 정도 터벅거리다보면 대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회룡산의 암릉이 우람하게 솟아있고, 전면 발아래에는 대리 항구(港口)가 내려다보인다. 이곳은 역시 머나먼 남쪽 섬, 항구에는 우리가 타고 온 배 한척이 외롭게 떠있을 따름이다.
▼ 기나긴 시멘트 포장도로와의 싸움 끝에 드디어 대리항(港)이 눈앞이다. 이때 대리 방향에서 트럭 한 대가 임도를 따라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금방 우리부부 옆에 도착한 트럭의 운전석에 앉아있던 산악회 정회장님, 우릴 보고 무조건 타란다. 절대 후회(後悔)할 일이 없을 터이니 고민하지 말고 타라니 그럴 수밖에... 그렇게 우리부부는 예정에 없었던 항리마을로 향했다. 항리마을은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의 촬영지(撮影地)로 잘 알려져 있고, 강호동의 ‘1박2일’이 이곳에서 촬영된 탓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어떻게라도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정회장님 덕분에 우연찮게 들러보는 행운을 얻었다. 그래서 내가 정회장님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 항리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포장도로는 경사(傾斜)가 심하기 때문에 웬만한 승용차는 다니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도로(道路)의 왼편은 까마득한 낭떠러지, 비록 나무들이 우거졌지만 행여나 차(車)라도 구를 경우에는 바다로 직행(直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주요 운송(運送)수단이 트럭인가 보다. 가슴을 조이며 달리길 10분 정도이면 드디어 항리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섬등반도의 목덜미 부분에 해당하는 항리 마을은 이름도 지형(地形)상 생김 그대로 목 항(項) 자를 쓰고 있다. 항리마을에 도착하면 평소 우리 주위에서 보기 힘든 경관들을 만나게 된다. 이곳의 대표적 명물인 구릉(丘陵)은 두 말할 나위가 없지만, 구릉의 왼편 까마득한 절벽(絶壁)아래 해안까지 이러지는 계단도 평소에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나무테크 계단(階段)이 해안까지 지그재그로 이어지고 있는데, 계단의 맨 아래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 길이가 길다.
▼ 가거도의 해안(海岸)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절경(絶景)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곳은 섬등반도다. 규모는 별로 크지 않지만,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서 공중에서 바라볼 경우 완벽한 반도지형을 그려낸다고 한다. 작은 암봉과 푸른 초원으로 이루어진 섬등반도는 폐교(廢校)와 근처 폐가(廢家)들의 집모양만 빼면 영락없는 이국적(異國的) 풍경이다. 오래전에 업무 때문에 들렀던 스코틀랜드의 북단에서 보았던 구릉(丘陵)을 연상시키고 있다. 구릉에서 뛰어 놀고 있는 염소 한 마리, 같이 간 아낙내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염소 옆으로 향하고 있다. 주민들이 풀어 키우던 흑염소들이 언제부턴가 야생(野生)으로 변했고, 지금은 가거도에서 어엿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한다.
▼ 항리마을은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곳이다. 절벽 위에 올라 앉아있는 민박집 방안에서도 해넘이와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가거도는 홍도의 명성(名聲)에 가려 관광지(觀光地)로서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산과 바다, 그리고 절벽(絶壁)이 어우러지고 있는 광경(光景)은 홍도보다 더 나았지 못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홍도보다 훨씬 더 빼어난 자태(姿態)이네요’ 집사람도 나와 같은 느낌인 모양이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觀點)이 다르겠지만, 나와 내 집사람의 눈에는 홍도보다 더 멋진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 항리부락에서 3구인 대항리 방향으로 언덕을 올라선다. ‘극락도 살인사건’이라는 영화를 찍은 몇 채의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집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살지 않아 폐가(廢家)로 남아 있다. 영화를 찍었던 흔적까지도 폐가로 변한 집주인들이 이곳을 떠나면서 가져가버린 듯 영화촬영의 흔적(痕迹)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또한 이곳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강호동의 '1박 2일'이 놀았던 자취도 찾아볼 수가 없다. 빈 뜰에 그저 무성하게 자란 잡초(雜草)들만이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 오후 1시 정각에 ‘남해 스타’호는 조금 더 머물고 싶은 아쉬움을 남겨둔 채로 가거도를 출발한다. 항구를 벗어나자마자 배가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얼마나 파도(波濤)가 거친지. 우리가 탄 배가 제법 커다란 배인데도 공중으로 붕 떴다가 떨어지는 것이 숫제 ‘파도타기’ 수준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기성(奇聲)들, 대부분이 날카로운 소프라노들인 것을 보면 여자 분들이 내지르는 소리임이 분명하다. 겁에 질려서 내지르는 소리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괴(奇怪)한 외침의 정체가 서서히 밝혀지게 된다. 그 소리 지름은 결코 겁에 질려서가 아니라, 스릴을 즐기면서 외치는 환호성(歡呼聲)이었던 것이다. 누가 여자를 보고 약하다고 했던가? 겁에 질려있는 나를 비웃듯이, 나름대로 위험(危險)을 즐기고 있는 저런 여자들을 보고 말이다. 거친 파도가 뒤에서 배를 밀어주었는지, 4시간30분이 걸린다는 목포까지의 뱃길을 3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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