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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거창 현성산

산마루금 2013. 10. 10. 16:00

현성산 정상에서는 서문가바위 능선 뒤로 덕유에서 남덕유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잘 드러난다.

 

 

거창 현성산/2013. 9. 15

 

경남 거창과 함양을 경계짓는 금원산~기백산~황석산~거망산 능선은 1300고지를 넘나드는 장쾌한 능선이다.

지리산 능선에 못지 않은 장쾌함을 가진 이 능선을 '서부 알프스'라고도 한다.   

 

대부분이 육산인 금원산 능선을 따라 유독 눈에 띄는 암릉이 거창 위천면으로 가지를 뻗어 가는데 현성산(玄城山·965m)이다.

주능선에 비하면 별로 크지 않은 산이지만 기기묘묘한 암릉과 청정계곡, 유서 깊은 유적지 등으로 명품코스를 가지고 있다.

 

*산행코스 : 미폭~슬랩지대~현성산~서문가바위~976봉 삼거리~금원산방향 삼거리~낙엽송군락지~지재미계곡~문바위~휴양림매표소(7.5km, 일반산행시간 4시간)

 

 

 

 

들머리인 미폭(米瀑)은 이름 그대로 쌀알이 굴러 내리는 듯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옛날에 폭포 위에 동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해서 동암폭포라고도 불린다.

동암사에서 쌀 씻은 물이 흘러내렸다고 해서 '쌀 이는 폭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처음부터 가파른 암릉길이 시작된다.

 

주렁주렁 나뭇가지에 달린 빨갛게 익은 열매가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현성산은 바위산이라서 슬랩지대도 많다.

 

대부분의 바위산이 그렇듯이 울창한 송림군락도 많다. 

 

대부분의 슬랩지대를 오르는 산길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줄줄이 어이지는 전망지에서 뒤를 돌아 보니 다른 산꾼들이 전망바위에서 조망을 즐기고 있다.

 

기백산에서 금원산으로 이어지는 부드럽지만 웅장한 능선이 모두 드러난다. 

 

중턱 전망대에 다다르면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기백산을 자세히 바라보면 명물인 누룩덤이 보인다. 

 

[기백산 누룩덤 자료/2008. 8. 26]

기백산의 장쾌한 능선 위에 홀연히 솟은 누룩덤은 누룩을 쌓아놓은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책을 포개놓은 것처럼 보여 책바위라고도 한다. 맨밑 바위는 금방 떨어질 듯 스릴을 느끼게 해준다. 

 

달팽이를 닮은 바위 너머로 금원산이 보인다.

 

한 면이 움푹 들러 패여 흡사 병풍을 친 것 같다.

 

네모바위라는 곳에 다다르면 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경사에 압도 당한다.  

 

연꽃바위, 세모바위, 네모바위 등 산꾼들이 붙인 이름이 있지만 기묘한 바위가 많으니 큰 의미가 없다.

 

칼바위 암릉 위를 계단을 타고 오른다. 

 

안전난간에 의지해서 지나가기도 한다.

 

출발부터 타고 올라온 끊임 없는 암릉이 한 눈에 보인다.

 

동쪽으로 가을들녘이 풍요롭게 익어가고 멀리 수도산에서 가야산을 지나 미인봉으로 남하하는 능선이 보인다. 

 

정상에 다다르면 사방으로 거침 없이 트인 조망이 압권이다.

 

현성산 정상석에는 작은 글씨로 '거무시'라고 따로 적혀 있다. 

성스럽고 높음을 뜻하는 '감'의 한문 표기를 검을 현(玄)으로 해서 현성산이 됐다는 것이다.

감뫼-검산-거무성-거무시로 변천한 것의 한문 표기라는 것.

또 '거무시'를 '검은 성'으로 해석해 현성산으로 썼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현성산의 모산(母山)인 금원산(金猿山) 역시 정상석 뒷면 원래 이름이 '검은산'이었다고 설명돼 있다.

금빛 원숭이가 날뛰는 것을 붙잡아 바위에 가두었다는 전설 때문에 금원산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금원산 역시 '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성산 남쪽에 솟은 오두산(烏頭峰) 역시 원래 이름이 '가막달'이다. 이 산의 정상에 거무스름하고 둥근 바위가 얹혀 있다.

역시 '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거창 위천면을 둘러싼 금원산 현성산 오두봉 등은 모두 '검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검다'는 말의 뜻을 단순히 색상의 의미로만 보기보다는 '높고 성스럽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자료인용:국제신문]

 

오똑한 서문가바위 방향을 정상에서 바라보면 뒤로 백두대간 덕유산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 모습이 장관이다.

 

기백산과 금원산을 잇는 능선 아래로 지재미계곡과 유안청계곡이 시원하게 드러난다.

 

서문가바위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서씨와 문씨 성을 가진 두 남자가 한 여인과 함께 이 바위 아래 석굴에서 피란생활을 했는데 그 여인이 아이를 낳자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어 성을 서문(西門)씨(氏)로 붙였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전설일 뿐이다.

 

안음 서문씨의 시조는 고려 말 공민왕의 왕비였던 원나라 노국공주를 따라 원나라에서 건너온 서문기(西門記)이며, 왕으로부터 안음군(현재 거창 위천면, 함양 안의면 일대)의 땅을 식읍으로 받아 이 지역에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다.

서문기는 이후 고려가 패망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금원산 자락의 바위 암봉 아래에 숨어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 암봉이 현재의 서문가바위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도 한다.[자료인용:국제신문]

 

 

서문가바위로 가려면 다시 가파르게 내려섰다가 올라야 하는데 유독 여기의 단풍만 짙게 물들기 시작했다. 

 

금원산과 그 능선이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하산길은 금원산으로 향하는 능선으로 방향을 꺾었다가 낮은 안부에서 계곡으로 내려서야 한다.

 

정상을 지나도 암릉은 계속 이어진다.

 

서문가바위도 지나고 암릉을 오르내리다 보면 금원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만난다.

 

지리능선을 만난 것처럼 장쾌하고 웅장하지만 부드럽기가 그지 없다.

 

뒤돌아 보면 이곳까지 끊임 없이 이어져온 암릉이 날카롭게 드러난다.

 

금원산으로 향하는 능선까지 다다르면 드디어 바윗길은 황급히 자취를 감춘다.

 

금원산 방향으로 부드러운 육산능선을 따라 계곡으로 하산하는 갈림길에 다다르면 이정표는 없고 수많은 시그널만 널려 있다.

 

40~50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수고를 지닌 낙엽송숲은 정글에 들어온 것처럼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계곡길은 점점 평탄해지며 산 속 민가에 다다르게 되고 이곳에서는 현성산 암릉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민가에서부터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너른 길을 따라 편안하게 간다.

 

가섭사지 마애삼존불상으로 가는 입구에는 가섭사의 일주문 역할과 지재미계곡의 대문 역할을 했다고 하는 엄청난 크기의 문바위가 있다.

문바위에는 '달암 이선생 순절동'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고려가 망하자 충신 이원달은 조담석상에서 북쪽 송도를 향하여 꿇어 앉아 나날을 보냈고 그의 부인 김씨와 함께 은거 하였다는 금달암이 있으며 망국의 한을 품고 숨어 살다가 순절하였다는 두문암이 있다고 했는데, 이 두문암이 '문바위'이다.

지재미계곡은 계속 흘러가면서 유안청계곡과 만나게 된다.

 

금원산자연휴양림 입구에 다다르면 산행은 끝이 난다.

 

선녀폭포로도 불리는 선녀담은 선녀 3명이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그만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물 밑 바위로 숨어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계곡을 건너오면서 종일 눈이 즐거웠던 산행을 마무리한다.

출처 : 바람불고 돛이 팽팽해지면
글쓴이 : 율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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