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루금
[스크랩] 세계에서 가장 멋지다는 섬, 조도(`11`12`31-`12.1.1) 본문
조도 돈대산(墩臺山, 230.8m)
산행일 : ‘11. 12. 31(토) - ’12. 1. 1(일)
소재지 : 전남 진도군 조도면 하조도
산행코스 : 어유포선착장→도리산 전망대(日沒)→한옥마을(1박)→하조도 등대(日出)→창유의 구(舊)보건지소 앞에서 산행 시작→돈대산→킹콩산→손가락바위→산행마을에서 산행 마감 (산행시간 : 1시간 30분)
함께한 산악회 : 매듭여행이야기
특징 : 조도의 풍광(風光)은 가히 낭만적이다. 도리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점점이 떠있는 섬들의 모습이 그렇고, 층암절벽(層巖絶壁)으로 이루어진 손가락바위에 올라,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경도 그렇다. 특히 손가락바위의 바위동굴에 들어가 바라보는 밖의 풍경, 액자(額子) 속에 가둬놓은 다도해의 풍경은 가히 압권(壓卷)이다. 바다와 산이 빚어놓은 기경(奇景), 섬과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사람들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곳이 조도이다. 특히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이 돋보이고 있었다. 관광지와 산행로는 말끔히 정비(整備)되어 있었고, ‘하조도 등대’에서는 새해(新年) 해돋이(日出)를 보기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뜨끈뜨끈한 떡국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떡국이 맛이 있는 것은 국에 들어간 굴과 전복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건네주는 정감(情感)어린 마음만 가지고도 떡국은 틀림없이 맛이 있었을 테니까.
▼ 관매도에서 배를 타고 진도 쪽으로 30분 정도 들어가면 조도가 나온다. 상조도와 하조도를 연결하는 아치형 연도교(連島橋)가 보이더니 배는 하조도의 어유포항에 도착했다. 지금은 창유라고 불리는 어유포항은 면소재지가 위치한 하조도의 관문이다. 육중한 철갑의 선수(船首)를 밟고 부두로 내려서면, 정면에 터미널과 민박집, 매점, 다도해국립공원 조도분소가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관광지(觀光地)와는 거리가 먼 차분하고 조용한 첫인상이 무척 낯설다. 조도면의 소재지인 창유는 이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창유항에 도착해서 국립공원관리소 조도분소에 들러 간이 지도(地圖)를 구한다면 섬내를 둘러보는데 편리할 것이다.
어유포항에 내리자마자 포구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로 갈아탄다. 내일의 투어(tour)일정이 타이트(tait)하기 때문에 오늘 앞당겨서 도리산 전망대를 답사한다는 것이다. 도리산 전망대는 해넘이(日沒)를 지켜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가야만했던 곳이니 차라리 잘 되었다.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해를 이렇게 소문난 곳에서 볼 수 있다니 얼마나 행운인가.
▼ 도리산 전망대(展望臺, 210m)에서 바라본 조도대교(大橋), 도리산 전망대는 상조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저 다리를 건너야만 이곳에 올 수가 있다. 관광버스 기사의 말에 의하면, 다리가 아치(arch)형이기 때문에 안개라도 잔뜩 낀 날에 다리 위로 차를 몰라치면 전면(前面의 차창에 하늘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명 하늘다리라고도 불린단다. 1997년에 세워진 저 다리(橋) 덕분에 조도군도의 핵심을 이루는 두 섬을 한꺼번에 묶어서 여행하기가 쉬워졌다. 참고로 이 조도대교와 주변 갯벌사이로 난 도로(道路)는 2006년 당시 건교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하나로 꼽혔던 곳이다. 하조도와 상조도 앞에 있는 훼도를 연결한 아치형의 다리로 다도해의 구름다리로 불리는 아름다운 구조물(構造物)이다.
‘조도를 찾아온 어느 여행객(旅行客)이 일기가 나빠서 새때 같은 섬들을 제대로 구경 못했답니다. 속이 상한 여행객이 섬을 돌아다니면서 조도에 조금 힘을 주어 ’좃도! 좃도!‘하고 다니다가, 섬에 사시는 할아버지에게 좃나게 뺨을 얻어맞았답니다. 그러니 이 섬에 들어와서는 조도를 발음할 때 힘(accent)을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관광버스 기사의 넉살좋은 재담(才談)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온다. 톳이나 무우 그리고 전복 등, 이 섬의 특산물(特産物)이나 풍물(風物) 소개에 그치지 않고 음담패설(淫談悖說)까지,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잘도 넘나들고 있다.
▼ 도리산 전망대가 있는 상조도로 가려면 우선 조도면소재지(所在地)에서 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차를 달려야한다. 조도대교를 넘어 상조도에 위치한 도리산 전망대는 비교적 좁은 편이지만 정상까지 포장이 돼 있어 차로 오를 수 있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산길은 벼랑을 타고 산꼭대기까지 이어진다. 가는 길에 행여 바다라도 내려다볼라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길옆에 가드레일이 쳐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리산 전망대(展望臺)에 가까워지자 일행들이 갑자기 ‘아!’하고 탄성(歎聲)을 터뜨린다. 발아래 비취색 바다에 점점이 박혀 있는 섬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게 아닌가. 이곳은 다도해(多島海), 말 그대로 섬이 많은 바다이다. 그래도 그렇지, 많아도 너무 많다. 유인도와 무인도(119개)를 합해서 154개나 된다니 말이다. 그 많은 섬들이 잔잔한 바다에 널려있는 광경(光景)을 능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남해안에는 대략 2,300여 개의 섬이 있고, 그중 전라남도가 1,800여개로 전체 섬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오죽 했으면 바다 위에 섬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새떼가 앉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조도(鳥島)라고 불렀겠는가?
▼ 진도군청(郡廳)에서는 조도군도 일대의 다도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도리산에 전망대(展望臺)를 만들어 놓았다. 정상부에 있는 KT중계소 바로 앞에 목조(木造) 조망대(眺望臺)가 만들어져 있다. 이곳 외에 하조도의 돈대봉에서도 다도해의 절경(絶景)을 감상할 수 있으나, 산을 오르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일 것이다. 조도에서는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도 바다 위에 흩어져 있는 아름다운 섬들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만큼 뛰어난 경관(景觀)을 보여주는 곳은 흔치 않다. 거기다 힘들이지 않고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조도를 찾는 사람들은 빠뜨리지 않고 찾는 관광명소(觀光名所)가 되었다.
▼ 전망대에 서면 수많은 섬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는 광경(光景)이 펼쳐진다. 일찍이 남해안의 많은 섬들을 둘러봤지만 이곳의 다도해 풍경이 가장 으뜸이다. 코앞 나배도를 비롯해 조도대교와 하조도 일대, 대마도, 소마도, 관매도, 옥도, 관사도 등 새떼 같은 수십 개의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쓴 글에서 첩첩산중(疊疊山中)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 이곳을 ‘첩첩섬중‘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올망졸망한 섬들이 구태여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한눈에 다 들어오고 있다. 왜 이곳 조도를 ‘한국의 하롱베이’라 부르는지 실감이 난다.
▼ 도리산 전망대 아래 주차장 옆 언덕 위에는 정자(亭子)가 하나 세워져있다.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욕심에 냉큼 올라선다. 그러나 조금 전 올랐던 도리산 전망대에 비하면 조망은 한참 뒤떨어진다. 오래 머물 이유가 없기에 그냥 발길을 돌려버린다.
▼ 주차장에서 100m정도 걸어 내려오면 왼편에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또 하나의 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종합경기장의 성화대(聖火臺) 모양을 하고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조금 전의 도리산 전망대에서 보았던 경관에 결코 뒤지지 않는 풍광(風光)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는 섬의 동북쪽 바다가 잘 조망된다. 올망졸망한 섬들이 보석처럼 흩뿌려진 광경은 아예 시야(視野)의 범주를 넘어서버린다. 상조도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아무리 솜씨가 뛰어난 문인(文人)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앞도, 뒤도, 옆도 모두 바다이고 섬이다. 수많은 섬들이 본섬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다 초점(焦點)을 맞추고 풍경을 살펴야 할지 당혹스럽기만 하다.
▼ 짙은 먹구름 틈새로 하늘이 열려야할 시각, 태초(太初)의 그날처럼 황금색 빛줄기가 다도해의 올망졸망한 섬들 위로 쏟아져야 하건만, 화려한 색의 축제는 시작될 줄 모르고 있다. 하늘을 온통 구름으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지금쯤은 저 구름 너머에는 노루 꼬리만큼 남은 신묘(辛卯)년의 해가 서둘러 수평선을 향해 동백꽃처럼 낙화하고 있을 것이다. 구름 너머에 있을 낙조(落照)를 상상으로나마 그려본다. 섬과 섬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해가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오색 향연(饗宴)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문득 눈물 한 방울 똑 떨어뜨려 본다.
▼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도로(道路)로 올라가기 전에 이정표 하나가 세워져 있다. 오른편으로 약수터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들러보자. 아직 조성(造成)공사가 덜 끝났지만 역사적(歷史的)으로 의미 있는 공원이니까. ‘바실 홀 함장’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고 있단다. 영국 해군이었던 바실 홀 함장은 조선항해기(1816년)에서 조도에서 바라본 다도해의 풍경을 ‘지구에서 가장 멋진 곳’이라고 적었다. 그가 올라가 감탄을 했던 곳이 바로 ‘도리산 전망대’이다. 가장 편하게 조도 주변의 새떼처럼 흩어진 섬들을 한눈에 구경하는 방법은, 당연히 도리산 전망대에 오르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조도 주변의 섬들은 모두 군도(群島)로 이뤄져 있다. 가사군도, 성남군도, 독거군도, 거차군도, 맹골군도, 상도군도 등등. 이 군도들을 다시 모두 묶어서 조도군도라고 부른다.
▼ 새벽 6시, 주위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일출(日出)을 보러가기 위해 일어나야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신 탓인지 다들 눈가가 부스스하다. 새해(新年) 해맞이 행사는 조도에 있는 또 하나의 명소(名所)인 ‘하조도 등대(燈臺)’에서 열리니 응당 등대로 가게 될 것이다. 등대는 창리마을에서 어류포항으로 향하는 언덕을 넘어가다가 오른편에 보이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서면 된다, 겨우 차(車) 한 대나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협소한 시멘트 도로는 이내 비포장으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외길을 따라 들어가면 하조도의 동쪽 끝 벼랑을 끼고 있는 곶부리에 순백(純白)의 등대가 서 있다. 바로 ‘하조도 항로표지관리소’라는 행정명칭(行政名稱)으로 불리는 하조도 등대다. 이 등대는 1909년에 세워진 인천 팔미도 등대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등대라고 한다.
▼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길고 협소(狹小)한 비포장 길을 따라 들어가면, 결코 나타날 것 같지 않던 하조도 등대가 문득 나타난다. 등대는 마치 괴물처럼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고, 머리꼭대기에서는 레이저(laser) 광선을 마구 쏘아대고 있다. 등대 입구의 건물로 들어선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건물 내부에는 고사(告祀)상이 차려져 있고, 이곳 주민들이 따끈따끈한 떡국을 나누어주고 있다. 인파들이 몰려 많이 혼잡스럽지만 봉사(奉仕)활동을 하고 있는 주민들은 어느 한사람 얼굴에서도 결코 짜증스러운 표정을 찾아볼 수 없다. 전복과 굴로 국물을 잘 우려낸 떡국이 유별나게 맛이 있는 이유이다.
▼ 주민들은 떡국 외에도 불꽃놀이용 폭죽을 나누어주고 있다. 비록 해는 떠오르지 않지만 다들 행복(幸福)과 희망(希望)이 넘치는 표정들이다. 인정이 넘치는 폭죽으로 일출(日出)을 대신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 등대 뒤편의 암벽(巖壁)까지 나무데크 계단으로 연결시키면서, 그 끝에다 정자(亭子)도 세워놓았다. 이곳까지 왔으니 운림정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운림정에 올라서면, 거센 파도와 함께 비릿한 바닷 내음을 가득 품은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친다. 비록 이곳이 따뜻한 남쪽바다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동장군(冬將軍)이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는 1월 하고도 초하루인 것이다. 몹시 춥다.
▼ 등대 아래 해안(海岸)의 절벽 위에는 나무데크를 만들어놓았고, 가운데에 둥그런 조형물(造形物) 하나가 보인다. 지구(地球)를 표현한 조형물인데 돌고래 세 마리가 힘들게 떠받들고 있다. 정월 초하루 스산한 겨울날의 하조도 등대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차디찬 해풍(海風)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극한(極限)의 외로움에 몸부림치면서도, 꿋꿋이 홀로 지켜내고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絶壁)과 군데군데 에메랄드(emerald)빛 바다 빛깔이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올망졸망한 섬들이 널려있는 남해안의 풍경을 연상하고 찾아온 사람들이라면, 의외의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보며 조금은 실망할 것이다. 이곳에서 바라본 바다는 중간에 몇 개의 섬이 있지만 동해안의 탁 트인 바다를 연상케 한다.
▼ 창리마을에 있는 식당에서 촌닭육수를 사용해서 끓인 떡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조도의 마지막 일정인 돈대산 등정에 나선다. 창리마을의 팽나무 보호수(保護樹) 옆을 지나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진행방향 오른편에 ‘조도 보건지소’ 건물이 보인다. 보건지소 조금 못미처에서 왼편으로 보이는 임도(林道)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잘 닦인 임도는 얼마안가 오솔길로 바뀌면서 본격적으로 숲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 오솔길은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가면서 경사(傾斜)도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10분 정도 지나면 약수(藥水)터 삼거리에 닿게 된다. 플라스틱 통의 절반가량까지 물이 고여 있으나 마시는 것은 망설여진다. 아무리 좋은 약수라고 하더라도 고여 있는 물의 위생(衛生)상태까지 믿을 수는 없으니까. 이곳 삼거리에서 어느 곳으로 진행하더라도 주능선을 거쳐 돈대봉 정상으로 오를 수 있으나, 손가락바위 방향으로 진행하려면 왼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오른편으로 진행할 경우 돈대봉 정상을 밟은 후, 다시 올라갔던 길로 되돌아 내려와야 하는데, 등산마니아(mania)들이 제일 싫어하는 코스선택이기 때문이다.
▼ 약수터를 지나면서 길은 가팔라진다. 숨이 턱에 차게 5분 정도 치고 오르면 능선(稜線) 안부에 닿게 된다. 안부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내려서면 신금산으로 가게 되고, 돈대봉은 오른편에 오롯이 솟아있다. 뒤돌아보면 창리마을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가 아름답게 내려다보인다. 가슴이 시원해진다. 이때 오늘 산행의 천려일실(千慮一失)이 발생했다. 왼편으로 진행해서 기암괴석(奇巖怪石)으로 이루어진 암릉을 밟아봐야 하는데도. 빼먹고 오른편 돈대봉으로 올라버린 것이다. 돈대봉 정상에 오른 후, 발아래에 펼쳐지고 있는 암릉을 보고 그런 사실을 알았으나 이미 늦어버렸다. 다시 되돌아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빼어난 풍광(風光)만 가슴에 차곡차곡 담아본다.
▼ 긴 나무계단을 밟고 오른 돈대봉 정상은 의외로 평범하다. 수풀로 뒤덮인 조그마한 공터 한쪽에 삼각점이 박혀 있고, 보이지 않는 정상표지석 대신에 이정표(里程標)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이정표만 아니면 이곳이 정상인지도 모르고 그냥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는 곳이다. 기상(氣象)이 나빠지는지 시계가 점점 나빠지기 시작한다. 조도를 둘러싸고 있는 섬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산의 이름인 돈대는 높은 언덕에 옹벽이나, 성벽을 쌓아 적의 침입 등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던 곳을 말한다. 흔히 이곳에서 봉화를 올려 다른 지역으로 위험을 전하는 구실을 했다. 아마 이곳도 봉화대의 역할을 수행했었을 것이다. 정상에 세워진 이정표(돈대봉 330.8m, 약수터 500m/ 손가락바위 400m)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틀림없이 이 이정표는 진도군청에서 세웠을 것인데도 고도(高度)를 330.8m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진도군청의 홈페이지에는 이곳의 높이를 230.8m로 표기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었더라면 이런 언밸런스(unbalance)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 돈대봉 정상에서 손가락바위로 향한다. 손가락 바위는 이 섬의 최대 명물(名物)로 소문이 나있다. 흙과 암릉이 알맞게 섞인 능선은 비록 빼어나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료할 만큼 심심하지도 않다. 능선을 걸으면, 양편으로 쪽빛 바다와 섬들이 내 발걸음에 보조(步調)를 맞추며 따라오고 있다.
▼ 조도에 오면 사람들은 대부분 상조도에 있는 도리산 전망대를 찾는다. 상조도에 도리산 전망대가 있다면 하조도에는 푸근한 바다와 근육질의 산이 어울리면서 만들어내는 풍경(風景)이 있다. 바로 돈대봉이다. 해발고도(海拔高度)로 보자면 육지의 이름난 산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정도지만, 암릉(巖稜)과 층암절벽(層巖絶壁)이 빚어내는 풍광(風光)은 가히 절경(絶景)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 정상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완만(緩慢)한 내리막길이 끝나면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벼랑길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엔 범상치 않은 바위 하나가 건너다보인다. 바로 손가락바위이다. 건너편 손가락바위로 가려면 우선은 이쪽 벼랑을 내려서야만 한다. ‘머리 조심하세요.’ 벼랑에 매어진 로프는 하나,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과 겹쳐져서 지체현상을 빚고 있다. 반대편 사람들이 모두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머리 위에 있는 바위를 조심하라는 조언(助言)으로 소일거리를 삼아본다.
▼ 손가락바위는 뭔가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 같은 층암(層巖)으로 이뤄져 있다. 솟아있는 층암을 찬찬히 살펴보면 다섯 개의 손가락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엄지손가락에 해당되는 손가락의 중간쯤에는 사람 하나가 드나들 만한 동굴(洞窟)이 나있다. 나무로 엮어 만든 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그냥 지나치는 우(愚)를 범하지 말자. 혹시라도 부서지지나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사다리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올라보자. 그 끝에는 희열(喜悅)이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사다리 위로 올라 굴 안으로 들어선다. 어른 한 사람이 간신히 다닐 수 있는 크기의 바위굴은 어둡고 침침했다. 그래도 동굴 바닥은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다녀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동굴에 들어서면 처음에는 점점 좁아지다가 반대편 끝이 바다를 향해 활짝 열린다. 그것은 다도해(多島海)를 향해 열린 천연(天然)의 창문이다. 창문은 멋진 전망대이다. 창틀이 액자(額子)로 변하면서 그림처럼 관매도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 동굴(洞窟) 안에서 바다를 내다본다. 동굴의 테두리가 흡사 액자(額子)의 틀을 닮았다. 비록 희미하지만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이 액자 속에 갇혀 있다. 올망졸망한 섬들이 한 폭의 동양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다도해(多島海)란 많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바다란 뜻이다. 다도해라는 단어는 우리들에게 익숙하지만, 이정도로 섬들이 꽉 들어찬 바다는 결코 흔치 않다. 우리의 남해안은 그리스의 에게해와 함께 대표적인 다도해로 알려진 곳이다. 특히 다도해의 진수라고 소문난 전남 해안(海岸), 그중에서도 154개가 밀집하고 있는 이곳 조도군도는 그리스의 에게해를 뛰어넘는 리아스식 해안의 진수(眞髓)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동굴 끝 오른쪽 사면(斜面)의 계단처럼 생긴 바위를 타고 오르면 길지 않은 벼랑 위의 능선이다. 한 번 더 모서리를 잡고 올라서면 손가락바위 정상이다. 그러나 오르는 길이 까다롭고 위험하니 조심을 요한다. 요즘 부쩍 바위 위로 오르기 좋아하는 집사람, 부득불 올라가야겠다고 우긴다. 바치고 떠밀어서야 겨우 바위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바위 정상은 제법 넓은 너럭바위로 되어 있는데, 전망대(展望臺)로서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일기가 나빠서 희미하지만 사방으로 거칠 것 없이 섬들이 펼쳐지고 있다.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다시 동굴을 빠져나온 후, 이번에는 손가락바위 아래로 우회(迂回)를 한다. 바위구간을 지나 뒤돌아보면 또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아까는 손가락 다섯 개의 바위였는데 이번에는 손가락이 하나뿐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우람한 손가락을 곧게 펴고 있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곧바로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곤우마을로 가게 되고, 산행마을은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된다.
▼ 능선 삼거리에서 오른편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은 한마디로 순하다. 흙길에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하니 내려서는데 조금도 어렵지가 않다. 하산길에서도 이곳 주민들의 정성은 눈에 띈다. 가지런히 정리된 등산로가 정성들여 손질한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가시덤불과 난대림(暖帶林)이 우거진 산길을 빠져나가면 곧이어 시멘트포장도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리 마을로 연결되는 아스팔트도로를 만나게 되면서 산행은 끝을 맺는다. 총 산행거리 약 4km. 최고 고도(高度) 230.8m. 오늘 우리가 걸었던 산행기록이다. 산행이라고 부르기에 낯간지러울 정도이지만, 산세(山勢)만 볼 것 같으면 다른 곳의 커다란 산들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 창유로 넘어가는 도로의 좌우(左右)로는 겨울철 바닷바람에 속살이 돋은 무밭이 천지다. 검은 천을 덥고 있는 밭도 보인다. 쑥밭이란다. 저렇게 검은 천을 씌우면 웃자라지 않을뿐더러, 쭉정이도 생기지 않아서 좋단다. 갑자기 들려오는 집사람의 탄성(歎聲)! ‘와! 강원도에서는 생각지도 못하는데...’ 한겨울에 들판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익숙하지 않았나 보다. 하긴 집사람의 고향인 강원도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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