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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를 애도하며

산마루금 2013. 5. 8. 18:30

스티브 잡스를 애도하며 

-홍종국-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결국 사망했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진시황과 나폴레옹처럼 독단적인 카리스마와 열정으로 세계 IT업계를 풍미한 스티브 잡스가 가다니 우리는 또하나의 전설을 간직하게 되었지만 애플은 그를 잃어버림으로 생존의 기로에서 격랑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혹시나 어제 애플의 신제품발표가 그의 죽음때문에 맥빠진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애플이 그의 죽음을 잠시 감추지는 않았는지....그러나 애플이 발표한 "스티브의 명석함과 열정, 에너지는 우리 세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 끝없는 혁신의 근원이었다. 세계는 스티브의 덕분에 진보했다" 는 애도성명은 그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이제 세상에 누가있어 스티브 잡스를 대신하여 스마트세상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까? 그는 천재적인 창의성과 모험으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인물로써 신화와 전설로만 기억하기엔 너무도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불만과 열등감을 "세상의 변화"로 나타내고자 하는 독특한 사람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불세출의 기인이었는데 나보다도 이른 나이에 가다니 진정 안타깝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죽음에 관한 잡스의 이야기

인생의 절정기를 달리던 잡스에게 찾아든 건, 병마였다. 2004년 어느 봄날 잡스는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아침 7시30분에 시작해 몇 시간에 걸쳐 진행된 검사에서 그는 암 진단을 받는다. 췌장암이었다. 그때까지 그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다.

의사들은 “앞으로 살 날이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기도 했다.

그 날 저녁 잡스는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는 조직검사를 다시 받았다. 잡스가 마취상태에서 깰 때쯤 그의 아내 로렌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해준다.

“여보, 당신은 살 수 있어요. 수술이 가능하대요!”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잡스의 췌장암은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형태의 종양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들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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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를 이기고 애플에 다시 복귀한 잡스가 선보인 것이 바로 아이폰(iPhone)이다.

2007년 1월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컨퍼런스에서 여느 때처럼 청바지와 검정색 긴팔 셔츠를 입은 잡스가 등장했다. 잡스의 등 뒤 스크린에는 아이팟과 닮은 제품 하나가 떴다. 잡스는 “혁신적인 제품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며 아이폰을 선보였다. 이날 애플은 회사이름을 ‘애플컴퓨터’에서 ‘애플INC'로 바꾼다. 더 이상 컴퓨터로 자신의 정체성을 한정시키지 않고 영역을 넓혀가겠다는 의미였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기 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아이폰의 성공가능성을 낮게 봤다. 애플은 이동통신에 전혀 경험이 없었다. 기술도, 기술자도, 생산시설도, 판매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애플이 아이팟을 히트시키며 컴퓨터 이외 분야에서도 성공했지만, 휴대폰은 다른 제품이었다. 좋은 품질과 잘 갖춘 유통망이 있으면 팔리는 컴퓨터나 아이팟과는 달리, 휴대폰은 이동통신회사라는 파트너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파트너는 제조업체에 있어 ‘울트라 갑’의 위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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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잡스는 미국 최대 통신사인 AT&T와 협상을 벌여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개발의 모든 권한은 애플이 갖고, 통신료 매출액도 애플과 나누어 가지며, 로고나 디자인도 애플이 맡는다는 조건이었다. 심지어 아이폰의 시장 가격부터 A/S 방식, 광고까지 애플이 결정하도록 했다.

AT&T는 애플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주는 굴욕에 가까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AT&T는 미국 최대 통신회사였지만 1위 이미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로 업계를 이끌어 온 회사는 2위인 버라이존이었다. AT&T는 아이폰으로 혁신이라는 이미를 높여 젊은이들에게 다가서고 싶었다.

아이폰은 PC와 인터넷 중심의 세상을 모바일 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애플은 거대한 자본과 오랜 노하우가 필요한 통신시장에 혈혈단신으로 들어가 무혈입성 하듯 간단히 휴대폰 회사들을 제압했다. “혁신은 앞서가는 자와 뒤따르는 자를 구별시킨다”는 그의 말처럼, 전 세계 IT업체들은 애플을 뒤쫓아 가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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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개발 경험도 없고 생산시설도 없는 상황에서 잡스가 아이폰을 성공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창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기존 휴대폰 회사들은 휴대폰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휴대폰 통화품질을 경쟁했고, 화상통화 같은 각종 기능에 집착했다.

하지만 잡스는 달랐다. 휴대전화가 아닌 PC를 휴대폰처럼 들고 다닌다는 역발상을 했다. 자신의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깔 듯 휴대폰에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까는 재미를 넣어 준 것이 히트의 원동력이었다.

또 다른 성공요인은 고객이 참여할 수 있는 장터를 마련해 준 것이다. 바로 아이폰의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을 수 있는 앱스토어(App Store)다. 애플 앱스토어는 고객 참여를 유도하고 응용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풍부해 아이폰의 인기를 높이고 있다. 잡스가 창조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다.

앱스토어엔 컴퓨터를 만들었던 애플의 DNA도 녹아 들어가 있다. 전통적으로 컴퓨터 회사들은 제품만을 내놓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업그레이드를 한다. 앱스토어 역시 팔고 나면 그만이라는 보통의 제조업과는 다른 접근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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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병마는 다시 그를 찾아왔다. 2009년 잡스는 병이 재발하면서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는 생사를 오고가는 상황에서도 병실에서 아이패드 개발을 점검했다. 그가 병가로 자리를 비운 2009년 1월 애플 주가는 주당 78.2달러로 저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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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은 잡스의 해가 됐다. 잡스는 아이폰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아이패드를 선보여 태블릿PC 시대를 열었다. 휴대폰 업체들이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애플을 따라 붙자 아이패드로 전선을 넓혀나간 것이다. 잡스는 가정(애플 TV)이든 사무실(아이패드)이든 이동할 때(아이폰, 아이팟)든 모든 사람들이 애플 제품을 쓸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허브 전략인 셈이다.

애플은 2010년 5월26일 뉴욕 증시 종가 기준으로 2221억달러(278조원)를 기록해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쳤다. 그 뒤 애플은 3분기에 203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마이크소프트(162억달러)를 다시 한 번 추월했다. 그해 12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올해의 인물’로 잡스를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