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루금
'죽은 자들' (1987) 존 휴스턴 감독 본문
죽은 자들
존 휴스턴의 <죽은 자들>. 제임스 조이스가 트리에스테에서 쓴 단편이 원작이다.
The Dead The Dead
1987 영국,아일랜드,미국
드라마 상영시간 : 83분
감독 : 존 휴스턴
각본 : 토니 휴스턴
원작 :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은 모두 15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소년기, 성장기, 청년기, 장년기에 이르기까지 시간순으로 배열된 이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이 <죽은 자들>(The Dead)이다. 가장 나중에 완성됐고, 가장 긴 단편이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가족 파티가 주요 내용이다.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겨울밤에 친척들이 모여 회포를 풀며, ‘살아 있는 자’들의 행복을 서로 축하하는 자리다. 내레이터인 중년 남자는 소란했던 파티가 끝난 뒤 아내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본다. 아내는 그날 밤, 10대 시절 자신을 사랑했던 죽은 소년의 모습을 본 것 같다고 한다. 남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내의 슬픔에 황당해하고 질투까지 느낀다. 하지만 그는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밤하늘의 눈을 보며, 바로 그날 모든 ‘죽은 자들’이 이승의 ‘산 자’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느낀다. 소복하게 쌓이는 밤눈이 그런 신비한 ‘만남’을 축복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단편 <죽은 자들>은 소설집의 마지막에 실려, 결과적으로 <더블린 사람들>의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한다. 아내의 옛사랑의 죽음과 회한, 그리고 소복하게 내리는 눈은 <더블린 사람들>을 영원히 멜랑콜리한 세계로 남겨놓은 것이다.
<죽은 자들>이 완성되며, 그동안 숱하게 출판을 거절당하던 <더블린 사람들>은 1914년 드디어 발간됐다. 그런데 <죽은 자들>은 바로 아내 노라의 실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다. 트리에스테에서 조이스는 작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는데, 번번이 예술가로서 입신하는 데 실패했다. 영화 <노라>는 그 긴 좌절의 기록인데, 최종적으로는 마치 <죽은 자들>의 눈처럼 예술과 삶이 서로 접촉하는 신비한 순간을 그린 것이다. 말하자면 트리에스테 시절 조이스 문학의 특별한 테마인 ‘에피파니’(Epiphany, 문득 보이는 진실의 순간)는 바로 노라에게서 발견됐던 것이다.
조이스의 첫 망명지 트리에스테
단편 <죽은 자들>은 조이스 팬들에겐 보석 같은 작품이다. 이 소설을 각색한 영화가 존 휴스턴의 <죽은 자들>(1987)이다. 휴스턴이 81살을 일기로 죽은 해에 발표한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신비하게도 ‘노인’ 휴스턴의 마지막 작품은 ‘죽은 자’에 관한 영화였다. 친척들이 서로 기쁨을 과장하는 파티 분위기, 춤추는 장면, 식사 장면이 압도적으로 아름답게 촬영된 작품이다. 역시 마지막은 아내의 옛이야기로 끝맺는다. 영화의 내용은 더블린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그 소설이 트리에스테에서 어렵게 완성된 사실을 아는 조이스의 팬들에겐, 모든 내용이 더블린과 트리에스테 사이에서 일어난 꿈같은 이야기로 기억될 것이다. <죽은 자들>은 ‘마초맨’ 존 휴스턴이 제임스 조이스에게 표현한 최고의 헌사로 남아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트리에스테에서 10년간 거주하며 이 지역 작가들과 교류했다. 특히 조이스는 이탈리아계 유대인 작가 이탈로 스베보를 만나며 문학적 전환점을 맞는다. 스베보는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받은 소설 <제노의 의식>으로 유명한 작가다. 조이스는 그와 교류하며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사유를 확장했고, 결국 자신의 문학을 특징짓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서술 방식을 고안해냈다. 조이스와 스베보의 우정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조이스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율리시스>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캐릭터에는 ‘스베보의 의식’이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글 한창호(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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