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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산 (2) [2014-09-21] 본문

사람과 함께하는 풍경

고창 선운산 (2) [2014-09-21]

산마루금 2014. 9. 22. 15:42

 

 

앞에 보이는게 배맨바위가 아닌듯^^

병풍바위인가?

 

 

 

 

 

도솔암 내원궁

 

 

 

 

 

 

도솔암 마애불

저번에는 왜 못 뵜지?

 

 

 

 

 

 

 

도솔암

 

 

 

 

 

 

 

 

 

 

용문굴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 모친을 묻은 돌무덤이 있다.

 

 

 

 

 

 

 

드디어 꽃무릇 잔치가 시작된다^^

 

 

 

 

 

 

 

 

 

 

 

 

 

 

 

 

 

 

 

 

 

 

 

 

도솔암 마애불

[참고] 동학혁명사에 나오는 너무나 유명한 도솔암 마애불이다. 불상의 높이가 15미터인데 절벽에 바싹 붙어있어 높이가 더더욱 실감이 난다.

지금이야 난간도 설치되어 있고 이런저런 안전장치가 되어 있으니 낫지만 옛날에 어떻게 저기다 조각을 했을지 그저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너무나 유명한 조각이지만 정작 찾아오는 사람은 드문... 그런 곳이 아닐까? 이 마애불이 있는 도솔암이 바로 선운사의 암자라는 사실 자체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겠다.

마애불 위에 구멍들이 뚫려있고, 거기에 나무기둥들이 박혀있는 것으로 봐서는 예전에 저 위에 마애불을 가려주는 지붕도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은 드는데... 알 수는 없네 

 

 

 

 

 

 

[참고] 마애불 자체가 워낙 큰데다 절벽 바로 아래라서 한컷에 전체를 담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때에 검단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앞서 진흥굴의 예처럼 왕위를 버린 진흥왕이 세웠다는 것은 시대적으로는 비슷하겠으나 당시의 정치환경에서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검단선사가 쓴 비기를 저 위 마애불의 배꼽에 넣어두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이 검단선사의 비기가 유명해진 것은 조선말 전라도 관찰사였던 이서구가 저 비기를 꺼내본 것에서 시작된다. 검단선사의 비기를 꺼내는 자는 벼락을 맞을 것이라는 전설이 있었는데 이서구가 비기를 꺼내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내렸고 놀란 이서구가 서둘러 다시 마애불에 넣고 봉했다는 것이다. 이때 이서구가 보았던 비기의 문구는 단 하나: '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

동학농민전쟁 당시에 이 검단선사의 비기가 세상에 나오면 조선이 멸망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무장현을 근거지로 하는 동학접주 손화중이 장정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와서 비기를 꺼내갔다고 한다. 삼정의 문란으로 농민들의 삶이 최악이었기에 이판사판, 조선이 망하고 농민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염원에 따른 것이겠다. 비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손화중의 세력은 더욱 강성해졌었는데 이후 농민전쟁이 끝나고 손화중이 처형되면서 이 비기의 소재는 사라져버렸다. 

이 만화같은 이야기를 책으로만 보다가 현실의 마애불을 보니 참 뭐랄까....

 

 

 

 

 

 

 

 

확인을 못해서 아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