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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몇 년 전 교도소에서 나온 뒤 제대로 살아보려고 막노동을 하면서 애를 썼는데 또 실수를 해 자신이 너무 밉다는 내용으로 최후 진술을 했다. 관대한 형을 구하지도 않았고 초탈한 분위기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그의 진술 중 “가끔 피에로 공연을 하였다”는 말이 있어서 물어 보았다. 그는 나이 오십을 넘어서자 사람답게 살아 보자는 결심이 서서 일거리가 없는 날 가끔씩 길거리에서 피에로 분장을 하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할 때는 자기도 쓸모가 있는 것 같아서 정말 사는 맛이 났는데 이제 다 끝났다며 회한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30대 법관 시절에는 상습범죄자들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았다. 막노동을 하면 생계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을 텐데 절도나 강도를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것은 엄벌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재판을 계속하면서 차츰 다른 생각이 들었다. 상습범죄자들은 대부분 비슷한 삶의 궤적을 보인다. 가정에서 학대를 받아 가출을 하거나 가정이 깨어져 거리로 나가게 되고, 학교도 중퇴한다(10여 년 전 내가 심리한 형사부 사건의 기록을 모두 조사해 피고인들의 평균 학력을 내보니 중학교 2학년 중퇴로 밝혀졌다). 값싼 여인숙에 머물거나 길거리를 전전하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해 근근이 살다가 쉽게 돈을 얻을 수 있는 범죄의 길로 빠진다.
상습범죄자들은 근본적인 심리적 상처를 갖고 있다. 상당수 사람이 정신과 치료약을 계속 먹어야 할 정도다. 따뜻한 관심을 받아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자아존중감이 매우 낮은 데다, 사람들로부터 위험인물로 기피되거나 무시당하고 멸시받기 일쑤다. 이들은 쌓여 가는 무력감과 수치심 속에서 자신에 대해 절망한 채 살아간다. 도와줄 가족도 없고, 독립할 수 있는 직업적 능력도 없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자기를 성찰하고 일으켜 세울 만한 정신적 자원을 갖지 못한다. 이러다 보니 교도소에서 나와도 갱생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재범과 가중 처벌이 반복되며 삶의 태반을 교도소에서 보낸다.
카이로의 쓰레기 촌에서 넝마주이들과 20년 가까이 지내다가 프랑스로 돌아온 에마뉘엘 수녀는 파리의 노숙자와 윤락녀들을 만나면서 어느 때보다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카이로의 넝마주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깊은 절망감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이들은 사회의 멸시와 소외 속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의 자기 모멸감’에 빠져 있었고 술과 마약, 범죄밖에 할 일이 없었다. 그녀는 제3세계보다 더 끔찍한 절망감 속에 사는 이들을 ‘제4세계’라고 불렀다.
한 인간이 상습범죄자로 전락하는 가장 큰 원인은 개인의 도덕성 결함이라기보다 이러한 사회적 모욕이 이뤄지는 구조에 있다. 상습범죄자는 가해자이기 이전에 속으로 피를 흘리고 있는 피해자인 셈이다. 이런 상태를 해결하거나,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왜 범죄를 자꾸 저지르는가”라고 비난하는 것이 과연 공평한 것인지 의문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재범 위험성이 큰 상습범죄자를 관대하게 처리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재판 때마다 피고인에 대한 연민과 사회적 위험성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앞서의 피고인에게는 비교적 가벼운 형을 선택해 판결을 선고했다. “피고인이 비록 상습범죄자가 되었지만, 소중한 인간성은 잃지 않고 있다고 보여 다시 새롭게 살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내 마음을 솔직하게 밝혔다. 피고인은 약간 놀란 듯했고, 조용한 목소리로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상고를 하지 않아 그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아마 지금쯤 그는 출소했을 텐데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창백했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