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루금

사천 각산 본문

산 정보

사천 각산

산마루금 2024. 2. 20. 16:52

장 소 : 사천 각산

산 행 : 사천시문화회관~각산~대방사~대방진 굴항

 * 코스 A: 사천시문화회관~각산약수터~송신탑~팔각정~전망대~

                    각산정상(408 m)~각산산성~대방사~대방진굴항

                     (4.5 km, 3시간30)

            B: 대방진굴항~사천바다케이블카-자율투어

 

 

개요

각산산성과 각산봉수가 있고,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편이며 삼천포 앞바다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삼천포항 서쪽에 바다와 접하면서 실안동을 말발굽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이 각산(해발 398m)이다. 건너편 와룡산의 위세가 워낙 대단하여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인근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산은 전형적인 육산으로 산세가 포근한 느낌을 주고 있다. 남릉에 위치한 각산산성과 봉화대가 이 산의 위치적 중요성을 더욱 일깨우고 있다.

 

 

 

사천(각산) [398m] 산행개요

 

삼천포항을 서남 방향으로 병풍처럼 둘러 쳐 있는 산이 각산인데 바다를 한 눈에 굽어 볼 수 있는 지역으로서 이 산의 8부 능선에 길이 242m를 돌로 쌓은 석성(石城)이 남아 있으니 이 곳이 각산산성이다. 성의 남쪽 성문은 원형대로 남아 있으니 성벽의 대부분이 허물어져 있어 복원을 하였다. 이 성은 백제의 제30대 무왕 6(A.D 605)에 축성한 것으로 기록은 전하고 있다. 백제는 전성기에 영토를 이 지방까지 확장한 적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진주목본백제거열성(晋州牧本百濟居烈城)..... , 진주는 본래 백제의 거열성이었다.....하는 대목을 보면 진주가 백제의 영토였다는 사실이 명백히 나온다.

가야제국이 흩어져 살다가 가락국이 신라에 의하여 병합될 무렵에 진주지방이 고령, 가야는 백제가 공취하여 거열성을 두었다. 하고 무왕 6 2월에 각 산성을 쌓았다고 하였는데 이 성은 진주의 남쪽 76에 있다고 하였으니 오늘의 각산산성이다.

 

이 산성은 그 뒤 고려시대에는 삼별초난(三別抄亂)을 토평(討平)하는데도 활용되었으며 왜구의 침범에는 각산리의 주민들이 이 산성에 의지해서 대응했던 곳이다.

 

각산의 정상에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해 소식을 전하는 옛 통신수단인 봉화대가 옛 모습대로 남아있다.

 

고려 원종(재위12591274) 때에 성과 봉화대를 만들고, 줄항터에는 구라량영의 본거지를 두어 이곳을 지켰다. 고려 말에 사량도로 영을 옮기고 난 후, 이곳이 무방비상태로 되자 왜구가 침입하여 성에 불을 질르기도 했다.

 

그후 각산은 봉화대가 자리하는 곳이 되었으며, 봉수는 남쪽으로 대방산, 서쪽으로 곤양의 우산봉수, 북쪽으로 사천 안점봉수와 연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