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루금
이런 로또... 본문
2012.3.30
<푸른광장> 정미경 / 소설가 어떤 남자가 국회의원에 출마하려 하자, 그의 아내는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자리 펴고 드러누웠다. 드러누울 뿐만 아니라 울면서 말렸다. 뭐가 아쉬워서 그런 진흙탕 싸움에 뛰어들려 하는가. 정치가를 존경하기는커녕 비웃고 혐오하는 세태가 아닌가. 개인의 이력과 집안의 치부와 남모르게 쌓아둔 재산까지 모든 게 햇살 아래 낱낱이 공개되는 그 난리를 왜 겪으려 한단 말인가.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아내의 극심한 반대에도 뜻을 꺾지 않고 출마한 남편은 다행히 당선을 했다. 이후로 순탄하게 3선까지 한 그는 이제 여한이 없다 생각하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번에도 아내는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맸는데 자리에 드러눕는 걸로 모자라 식음을 전폐했다. 출마하기 전엔 물 한 모금 삼키지 않겠다며.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엄연히 주위에서 일어난 실화이다. 무엇이 이 여인으로 하여금 단식투쟁을 하게 했는지 궁금해서 국회의원의 특권을 대충 훑어보았다. 아하! 이런 로또 같은 경우가 있나!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려도, 쌍욕을 해도, 공중부양을 해도, 기물을 파손해도 경찰차가 출동하거나 쇠고랑을 차지 않는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이 있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만의 숨겨진 유토피아를 엿보고나니, 그녀의 심정이 완전 이해되었다. 우선 하루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도 120만원의 국회의원 연금을 받게 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재산이 수십억원이거나 수백억원이거나 묻거나 따지지 않고 죽을 때까지 지급되는 것이다. 국회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된 헌정회육성법이란다. 참고로 국민연금을 매달 10만원씩 내고 있는 나의 연금 수령 액수는 12만원 정도가 될 것이란다. 울컥해진 나는 속이 좁은 사람일까.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는 동안엔 또 어떤가. 가족수당과 자녀 학비수당이 지급된다. 우편 요금과 전화 요금은 세금으로 처리한다. 국회의원이 지역 구민에게 경조사비를 내면 받은 사람이 천문학적 배수의 벌금형을 받는 반면 일반인이 정치인에게 내는 후원금은 전액 세액공제를 해주는 훈훈한 법률도 제정해 놓았다. 그뿐인가. 일곱명까지 둘 수 있는 보좌관의 월급도 국가에서 지급한다. 장애인도 아닌데 자신의 가방을 보좌관에게 들린 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보다 훨씬 잘살지만 보좌관제도가 없는 스웨덴 의회에 연수라도 보내주고 싶다. 여행할 때는 기차표와 비즈니스석 항공권이 제공되며 자동차의 휘발유값 역시 지원된다. 여의도 근처의 휘발유값이 터무니없이 비싼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동시에 공천에 탈락한 순간 그들이 흘리는 닭똥 같은 눈물의 까닭도 짐작되었다. 세비는 어디에 쓰는지 궁금해졌다. 이러니 그들의 건배사는 ‘지금 이대로’일 수밖에 없고 온갖 신기루 같은 공약을 남발해서라도 이 모든 특권을 언제까지나 누리고 싶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국회의원 한 사람 앞에 들어가는 세금이 38억원이고 국회의원 숫자가 300명이라니, 수돗물이라도 이렇게 써서는 안 된다. 지역구라도 내려가면 변학도가 부럽지 않게 줄지어 문안하는 지방관리들과 기업인들 앞에선 갑이 된다. 그 특권을 누려본 사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강한 중독성이 있는 것이다. 졸지에 그 황금의자를 걷어차겠다는 남편 앞에서 머리에 수건 두르고 무한단식에 돌입하지 않을 여인네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총선을 앞둔 요즈음, 표심을 묻는 여론조사가 끊임없다. 엄청난 정치 과잉 속에 진짜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외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은 손톱만큼도 훼손받지 않으려는 그들이 생각하는 정치와 국민이 원하는 정치 사이에 교집합은 없어 보인다. 총선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국회의원 숫자를 10명만 줄여 그 예산을 독거노인의 급식 지원비로 즉시 전용하겠다거나, 자비로 국회의원 활동한 것도 아니니 연금은 거부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투표율이 왜 낮은지, 국회의원 후보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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